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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화경"의 '불신 지옥'을 믿나요?

기사승인 2021.10.15  17:4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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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때 세존께서는 비구들과 함께 코살라를 유행(流行)하시다가 깔라마 인의 마을인 께사뿌따에 들리셨습니다. 그때 마을 사람들이 싸끼야 족 출신의 성인인 고타마 존자가 마을에 오셨다는 말을 듣고 찾아와서 ‘많은 사문과 바라문들이 오면 자기의 주장만을 드러내고 다른 사람의 말은 비난하고 헐뜯고 멸시하니 우리는 누가 진리를 말하고 누가 거짓을 말하는지 의심을 갖게 되고 혼란스러워진다’고 세존께 여쭙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깔라마들이여, 여러분이 의심하고 혼란스러워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의심스러운 것을 대하면 그대들의 마음속에 혼란이 일어나기 마련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소문으로 들었다고 해서, 오래 전부터 전해온다고 해서, 누가 그렇다고 해서, 성전(聖典)에 써 있다고 해서, 추측해보니 그렇다고 해서, 논리적이라고 해서, 추론(推論)에 의해서, 이유가 적절하다고 해서, 우리가 사색하여 얻은 견해와 일치한다고 해서, 유력한 사람이 한 말이라고 해서, 또는 스승이라는 생각 때문에 그것들을 진실이라고 받아들이지 마십시오. 

  깔라마들이여, 여러분은 참으로 ‘이러한 법들은 유익한 것이고, 비난받지 않을 것이고, 지자(智者)들의 비난을 받지 않을 것이고, 전적으로 받들어 행하면 이익과 행복이 있다’고 스스로 알게 되면, 그것을 받아들이십시오. 그리고 ‘이런 법들은 나쁜 것이고, 비난받을 것이고, 지자들의 비난을 받을 것이고, 전적으로 행하면 해롭고 괴롭다’고 알게 되면 그것들을 버려야 합니다.(<앙굿따라니까야> ‘깔라마 경’)

  우리가 진리라고 믿고 받아들이는 선택의 기준은 그것이 나와 세상에 유익한가이고, 그것을 자기 스스로 체험하라는 말씀입니다. 실제로 체험으로 검증되는 진리는 믿을 필요조차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이미 사실이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불교는 무조건 믿는 것이 아니라 우선 따라해 보고 실제로 그런지 아닌지를 확인하는 신해행증(信解行證)의 체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추론이나 희론을 사견(邪見)으로 배척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세존께서는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보편성, 이치와 상식에 부합되는 타당성, 그리고 누가 해도 같은 결과가 도출되는 추증성을 갖춘 과학적 논리기반에 근거한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항상 현실에서 경험되는 사실을 바탕으로 하고, 또 누구나 자신의 경험을 판단의 기준으로 삼을 것을 누누이 강조하십니다. 이런 점에서 세존의 가르침은 만유의 보편적 진리를 근간으로 삼고 그 가치를 구현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가르침은 ‘현실에서 사실로 경험되는 것이고, 어느 때나 적용될 수 있는 것이고, 누구라도 보면 알 수 있는 것이며, 최상의 행복(열반)으로 인도하는 것이고, 지혜에 의해 스스로 경험될 수 있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세존은 항상 자신의 체험과 체득을 중시하고, 비록 당신의 말이라도 맹목적으로 추종하지 말고 먼저 자기 자신에게 유익한 법인지 아닌지를 따져보라고 하십니다. 그러니까 ‘와서 보라’는 것이지요. 와서 확인하고 해보고 검증하라는 것입니다. 얼마나 합리적이고 자신 있는 말씀입니까? 우리 불교가 ‘나 외에는 믿지 말고, 시험에 들지 말고, 무조건 믿어라’는 가르침이 아닌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자랑스럽게도 우리는 이런 분을 스승으로 받들고 있습니다.

  외도가 번창했던 부처님 당시와 마찬가지로 문명시대인 요즈음에도 수많은 교의(敎義)나 주의(主義), 주장이 난무하는 세상입니다. 길거리는 물론이고 전철이나 사람들이 모이는 공공의 장소에서, 개인의 집이나 병원 같은 사사로운 장소에서, 심지어는 자신과 생각을 달리하는 사람들의 사적인 모임에까지 찾아와 ‘불신 지옥’, ‘오직 ㅇㅇ’를 강요하는 유쾌하지 않은 광경을 우리는 자주 목격합니다. 최근에도 조계종의 한 교구장 스님에게까지 개신교회의 집사가 공공연한 선교행위를 하여 비난을 사고 있습니다. 물론 이들이 참으로 상대의 구원을 바라는 연민의 마음으로 그럴 수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러한 행태에 눈살을 찌푸리고 ‘광신·독선’이라 비웃습니다. 우리는 이들에게 당신들의 믿음과 행동이 자기 자신은 물론 이웃과 세상에 어떤 이익과 행복을 가져다주고 있는지를 물어야 합니다.  

  그런데 불교의 대승경전 가운데 최고라는 <법화경> 비유품에는 ‘와서 보라’는 세존의 가르침과는 아주 상반된 내용이 있어서 참으로 어리둥절합니다. ‘<법화경>을 믿지 않고 비방한 사람은 부처의 종자가 끊어지고, 그 죄의 과보가 아비지옥에서 수 겁 동안 고통을 받게 되며, 그 다음에 축생이나 인간으로 태어나더라도 여러 가지 온전하지 못한 과보를 받는다’고 하니 말입니다.

  당신의 가르침조차 그대로 믿지 말고 자신에게 합당한지 아닌지를 먼저 따져보라고 하셨던 부처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고는 상상하기가 어려운 참으로 황당한 대목입니다. 더구나 불신의 죄로 지옥은 물론 축생이나 인간으로 태어나서 그가 받아야할 고통은 참으로 처참하고 가학적입니다. 그런데 <법화경>의 ‘불신 지옥’을 강요하는 불자는 어디에도 볼 수가 없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 해야 할까요?

박/호/석/의/노/심/초/사
불교포커스 여시아사(如是我思)

세상에 그 어떤 종교나 철학보다도 불교가 수승한 것은 보편적이고 객관적이며 과학적 추증성까지 지닌 우주만유의 진리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한국불교는 천 년이 넘게 우리의 정신과 삶의 바탕이 된 비교우위의 역사와 문화적 전통도 가졌습니다. 그럼에도 최근 우리불교가 추락하고 있는 현실이 이해되지 않아 답답해 하면서 '부처님은 어떻게'를 염두로 이 문제를 풀어보고자 합니다.

필자는 자연과학자로 프랑스에 유학하고 농협대학 교수로 재직하였다. 대학생 시절 洪幻星 법사를 은사로 불교에 입문하여 古庵,九山, 杲山스님에게 수계하고, 修不스님에게 간화선을 배웠다. 퇴임후에는 인재양성만이 불교를 살리는 길이라고 군법회에 전념하면서, <니까야>공부와 불교 걱정으로 소일한다.

박호석_전, 대한불교삼보회 이사장 budgat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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