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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 화엄사 목조비로자나 삼신불좌상 국보 지정

기사승인 2021.06.26  08:3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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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존하는 우리나라 유일한 삼신불 조각이자 독보적인 초대형 규모
울진 불영사 불연 등 불교문화재 3건도 함께 보물 지정

국보 구례 화엄사 목조비로자나불삼신불좌상 (사진출처 : 문화재청)

 문화재청(청장 김현모)은 6월 23일 보물 '구례 화엄사 목조비로자나불삼신불좌상'을 국보로 지정하고, '울진 불영사 불연'을 비롯해 '완주 송광사 목조석가여래좌상 및 소조십육나한상 일괄' 2건을 보물로 지정하였다. 이에 앞서 6월 22일에는 경기도 유형문화재 '양주 회암사지 사리탑'을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하였다.

  국보 '구례 화엄사 목조비로자나삼신불좌상'은 현존하는 우리나라 불교조각 중 비로자나불-노사나불-석가모니불로 이루어진 '삼신불'로 구성된 유일한 작품으로 조선 시대 불교사상과 미술사 연구의 중요한 사례로 평가받아 왔다. 

삼신불은 법신 비로자나불, 보신 노사나불, 화신 석가모니불을 말하며 화엄사상에 근원을 둔 도상으로서, 변상도나 사경 등에는 종종 보이지만, 조각품으로는 화엄사 사례가 유일하다.

  화엄사 대웅전에 봉안된 3구의 좌상은 1635년(인조 13년) 당대 유명한 조각승인 청헌스님과 응원스님, 인균스님을 비롯해 이들의 제자들이 만든 17세기의 대표적인 불교조각이다. 모두 3미터가 넘는 초대형 불상이라 보는 이로 하여금 앞도적인 느낌을 준다.

  특히, 삼신불의 복장유물 등 관련 기록이 최근 발견되었으며, 이 기록을 통해 임진왜란 때 소실된 화엄사를 재건하면서(1630∼1636), 대웅전에 봉안하기 위해 삼신불을 제작한 시기(1634∼1635년)와 과정, 후원자, 참여자들의 실체가 더욱 명확하게 밝혀졌다.

  발원문에 의하면 전국 승단의 대표라 할 수 있는 팔도도총섭을 역임한 벽암 각성 스님(1575∼1660)의 주관 아래, 선조(재위 1567∼1608)의 여덟 번째 아들 의창군 이광(1589∼1645) 부부와 선조의 사위 동양위 신익성(1588∼1644) 부부 등 다수의 왕실 인물과 스님 580여명을 포함한 총 1,320명이 시주자로 참여하였다.

화엄사 삼신불 조성 불사를 주관한 벽암 각성 스님은 임진왜란 이후 완주 송광사, 법주사, 화엄사, 쌍계사 등 전란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대사찰의 중창 불사를 주도해 조선 후기 불교사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다.

의창군 이광은 선조의 여덟째 아들이며, 글씨를 잘 써 전국에 많은 현판과 비명(비석에 새긴 글씨)을 남겼으며, 화엄사와도 인연이 깊어 1636년 '지리사화엄사' 현판 등이 전래되고 있다.

신익성은 조선 중기에 활동한 문신이자 서예가로 문장과 글씨에 뛰어났고 그림에 대한 안목도 높아 당대 명사들과 폭넓게 교유하였다.

삼신불좌상은 화려한 연꽃을 갖춘 대좌(부처의 앉는 자리)와 팔각형 목조대좌에 다리를 서로 꼰 결가부좌 자세로 앉아 있다. 거대한 규모와 더불어 단순하면서도 선이 굵게 처리된 조각솜씨로 인해 중후한 느낌을 더한다. 이 삼신불상은 당시 가장 유명했던 조각승 집단인 청헌스님계와 응원스님‧인균스님계가 참여한 만큼 표현에서도 각 유파의 조각적 특징을 잘 보여준다. 근엄한 표정의 비로자나불과 석가모니상은 청헌스님계가 제작한 것으로 판단되는 반면, 부드러운 얼굴에 작은 눈과 두툼한 눈두덩이가 표현된 노사나불상은 응원스님과 인균스님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국보 '구례 화엄사 목조비로자나삼신불좌상'은 17세기를 대표하는 조각승 청헌스님, 응원스님, 인균스님과 제자들이 최고의 기량을 발휘하여 완성한 기념비적인 대작으로, 이는 불사를 주관한 벽암 각성 스님, 의창군 이광 등 왕실의 후원이 합쳐진 결과라고 할 수 있다. 17세기 제작된 목조불상 중 크기가 가장 크고, 조각으로 유일하게 비로자나불-노사나불-석가여래불로 표현된 삼신불 도상이라는 점에서 불교조각사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크고 중요할 뿐 아니라 예술‧조형적 수준도 조선 후기 불상 중에서 단연 돋보이므로 국보로 지정해도 손색이 없는 작품이다.

보물 울진 불영사 불연 (사진출처 : 문화재청)

  보물 '울진 불영사 불연(가마)'은 1670년(현종 11) 화원(그림 그리는 사람)으로 추정되는 광현, 성열, 덕진 등이 참여해 조성한 2기의 불교의례용 가마로서, 지금까지 알려진 약 20기의 조선 후기 불연 중 형태가 가장 온전하게 남아있는 사례다. 불교목공예의 일종인 불연이 보물로 가치를 인정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불연은 불가의 불보살상, 사리, 경전, 불패(불보살의 존호나 발원내용을 적은 나무패), 영가(불가에서 망자를 뜻하는 말) 등 예배의 대상을 가마에 싣고 의식이 거행되는 장소로 모셔오는 시련의식()에서 쓰이는 매우 중요한 의식법구다.

  그러나 지금까지 알려진 불연은 모두 17세기 이후에 제작된 것이고, 그 중에서도 제작연대를 알 수 있는 사례는 극히 드물다. 반면 '울진 불영사 불연'은 2기 모두 1670년이라는 분명한 연대와 학종스님이 좋은 장인을 만나 불연을 제작하게 된 배경, 제작에 동참한 시주자, 불연의 제작자로 추정되는 스님 등이 일목요연하게 기록되어 있어 조선 후기 불교목공예 연구의 귀중한 자료다.  

  전체적으로 단아한 균형미를 갖추었고 나무로 얽어 만든 둥근 궁륭형(활이나 무지개처럼 둥글게 굽은 형상) 지붕과 네 귀퉁이의 봉황조각, 난간의 용머리 장식, 가마의 몸체 전면에 표현된 연꽃, 국화, 화초 장식 등에서 보이는 조형미와 조각솜씨가 매우 뛰어나다.

  특히, 불연의 몸체 주렴(구슬 등을 꿰어서 만든 발)에 동경(청동거울)을 매단 최초의 사례로, 불상의 복장에서 발견되는 동경이나 불화의 복장낭 앞에 매단 동경처럼 어둠을 밝혀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상징으로 추정된다.

  보물 '울진 불영사 불연'은 조선 후기 불연 중 제작 당시의 온전한 형태를 간직하고 있고 제작배경을 상세히 담은 명문이 남아 있는 점, 공예기술 면에서 높은 예술적 완성도를 갖추고 있어 보물로 지정해 보호할 가치가 충분하다.
 

보물 완주 송광사 목조석가여래좌상 및 소조십육나한상 일괄 (사진출처 : 문화재청)

  보물 '완주 송광사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 및 소조십육나한상 일괄'은 1656년(효종 7년) 만들어진 불상으로, 당시 제작된 나한상 중 수량과 규모면에서 가장 큰 작품이다. 이 일군의 불상은 제작 당시 수조각승 무염스님의 통솔 아래 조각승들이 1∼4명씩 분담해 제작했다. 참여 조각승들은 무염스님·승일스님계 현진스님·청헌스님계, 수연스님계 등 역량이 뛰어났던 17세기 조각장들을 계승한 스님들이자 당시 불교계를 대표한 벽암 각성 스님(1575∼1660)의 요청에 의한 것으로 그 만큼 완주 송광사 나한전 불사의 중요성을 가늠케 한다.
  
완주 송광사 불상은 조각과 더불어 개금·개채 작업 등 조각승과 불화승간의 협업 체계를 잘 보여주는 작품으로, 영역이 다른 화원들이 어떻게 협업관계를 구축했는지 구체적으로 살펴 볼 수 있다. 당시 유행한 목조와 소조, 채색 기법을 두루 활용해 화려하며, 나한상의 표정과 몸동작에서 작가의 재치와 개성을 엿볼 수 있어 작품성도 뛰어나다.

  따라서 '완주 송광사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 및 소조십육나한상 일괄'은 송광사를 본산으로 활약했던 조각승들의 활동체계와 제작태도, 경향 등을 밝힐 수 있는 자료라는 점에서 조선 후기 불교조각사에 있어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보물 양주 회암사지 사리탑 (사진출처 : 문화재청)

  양주 회암사지 사리탑(이하 사리탑)은 조선 전기 왕실에서 발원하여 건립한 진신사리탑(석가모니의 몸에서 나온 사리를 모신 탑)으로 규모가 장대할 뿐만 아니라 보존상태도 양호하며, 사리탑의 형식과 불교미술의 도상, 장식문양 등 왕실불교미술의 여러 요소를 알 수 있는 귀중한 탑이다. 

  사적 '양주 회암사지'내에 위치한 사리탑은 발굴조사와 탑의 입지, 기록 등에  대한 학자들의 연구를 통해 석가모니의 진신사리가 봉안되었던 불탑임을 알 수 있다. 또한, 탑에 새겨진 다양한 조각은 조선 시대 왕실발원 석조물과 양식적인 부분이 비슷하며, 회암사 구역에 위치한 삼화상 탑과의 영향관계도 짐작해 볼 수 있다.

  사리탑은 팔각을 기본으로 구축된 다층의 기단부와 원구형 탑신 (탑기단과 상륜 사이의 탑의 몸), 상륜부(불탑 꼭대기에 있는 부분) 로 구성되어 있다. 팔각을 평면으로 지대석(지면을 단단하게 다진 후 놓는 돌) 윗면에 2층으로 조성된 기단을 구축하고 다른 승탑에 비해 기단 면석은 높게, 갑석은 두텁게 치석(돌 다듬는 일)하여 현존하는 사리탑 중 가장 높은 기단을 구비하고 있다. 또한, 기단의 각 면에 다양한 장엄(불교에서 건축, 공예, 불상 등을 치장한 장식을 통틀어 일컫는 말)이 새겨져 있는데 용과 기린, 초화문(꽃이나 풀과 같은 식물무늬), 당초문(여러 가지 덩굴이 꼬이며 뻗어 나가는 모양의 무늬), 팔부신중(불법을 지키는 8종의 신, 천·용·야차·아수라·건달바·긴나라·가루라·마후라가)이 하층기단 대석으로부터 상층기단 갑석(물건 위에 뚜껑처럼 올려놓는 납작한 돌)에 이르기까지 순차적으로 조식되어 있다.

탑신부는 원구형의 탑신을 지닌 또 하나의 승탑을 올려놓은 형상이다. 이와 같이 지대석을 포함해 전체 4단으로 구축된 기단 상면에 다시 낮은 팔각형의 기단을 놓고 위에 원구형의 탑신과 옥개석(탑신석 위에 놓는 지붕같이 생긴 돌(부재) 부위), 보륜(탑의 상륜부에 들어가는 원형 모양의 부재)으로 이루어진 상륜부를 구비한 승탑을 구축한 형상이다.

  전체적인 양식과 조영기법, 세부 문양들이 조선 전기의 왕릉을 비롯한 왕실 관련 석조물과 비슷하며, 사리탑의 규모, 치석 상태, 결구 수법 등을 고려할 때 당대 최고의 석공이 설계․시공했을 것으로 보인다. 해당 문화재는 조선 전기 석조미술의 정수이자 대표작으로 역사, 학술, 조형적 가치가 크다고 판단된다.

문화재청은 이번에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한 '구례 화엄사 목조비로자나삼신불좌상' 등 불교문화재 4건을 체계적으로 보존‧활용하기 위해 해당 지방자치단체, 소유자(관리자) 등과 적극적으로 협력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 본 저작물은 문화재청에서 2021년 6월 23일 작성하여 공공누리 제1유형으로 개방한 '새소식 > 보도/해명 > 구례 화엄사 목조비로자나삼신불좌상 국보 지정 (작성자 : 문화재청 유형문화재과팀)', 6월 22일 작성하여 공공누리 제1유형으로 개방한  '새소식 > 보도/해명 > 「무주 한풍루」, 「양주 회암사지 사리탑」 '보물' 지정 (작성자 : 문화재청 유형문화재과팀)' 을 이용하였으며, 해당 저작물은 '문화재청, http://www.cha.go.kr' 에서 무료로 내려받으실 수 있습니다.

문화재청_불교포커스 budgate@hanmail.net

<이 기사에 대해 반론·정정·추후 보도를 청구하실 분은 이메일(budgate@daum.net)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불교포커스'에서 생산한 저작물은 누구나 복사할 수 있으며, '정보공유라이센스 2.0:영리금지 개작금지'에 따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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