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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앞에 부끄러운 강제징용 소송 패소 판결

기사승인 2021.06.22  06:4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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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뒤집어진 대법원 판결

  지난 6월 7일, 강제동원 피해자가 일본 기업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각하 판결이 선고되었다. 그 내용은 2018년 10월과 11월의 대법원 판결을 뒤집는 내용이어서 거센 후폭풍이 일고 있다. 판결에 대한 국민적 공분은 판사 탄핵을 요구하는 국민청원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서는 법관이 소신 있게 업무를 수행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점에서 비판도 있으나, 선고가 내려지는 과정이나 선고 내용이 의구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무엇보다도 선고에 이르는 과정이 석연치 않다. 소송이 제기된 것은 2015년이었다. 소송 6년 만에 처음 열린 재판이 판결을 내리기 2주 전이었는데, 재판부는 서둘러 선고 기일을 잡아 놓고 추가 재판은 필요 없다며 단 한 차례 심리만으로 재판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당초 6월 10일로 예정되었던 재판을 사흘 앞당겨 7일 각하 판결을 선고했던 것이다. 재판이 열린다는 사실도 당일 오전에야, 그것도 원고 당사자가 아니라 대리인에게 통보했다. 기일이 늦춰지는 경우는 있지만, 갑작스럽게 당겨지는 건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그럼에도 재판부는 “법정의 평온과 안정을 고려”해서 선고를 앞당겼다고 해명했다. 재판부는 이 판결이 가져올 사회적 논란을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던 것이다.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들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원고들의 소를 모두 각하한다는 내용은 2018년 대법원의 전원합의체 판단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그 이유는 피해자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이 한·일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에 해당하여, 소로써 구제받을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 제한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는 2018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의 소수의견과 동일한 결론이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에서 이미 지적하고 있듯이, 이 사건은 대법원 판결 사건과는 별개이기 때문에, 재판부가 전원합의체 판결의 법정 의견에 기속되지 않고 소수의견에 따른 판결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2018년 대법원 판결은 2012년 판결에서 이미 내려진 판단에 대해 재상고가 이루어져 내려진 것으로 상당한 정도로 심사숙고의 과정을 거친 것으로 이해해야 하며, 따라서 하급심 법원이 다른 견해를 취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 ‘현저한 사정변경’이 있지 않는 한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법정의견이 존중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 사건 재판부는 별다른 사정변경의 제시 없이 대법원 판결을 뒤집고 있다. 

  부족한 근거, 박약한 논리

  피해자들의 권리가 있고 없음을 법리적으로 판단하면 될 사안에서 재판부는 정치 외교적 고려사항을 언급하는 무리수를 두고 있다. 그 근거는 부족하고, 동원된 논리는 박약하다. 재판부가 판단의 근거로 삼은 것 중에 대표적인 것이 ‘한·일 투자 자유화・증진 및 보호 협정(이하 한·일 투자협정)’이다. 재판부는 피해자들의 소송이 받아들여져 일본 기업에 대한 배상이 확정되고, 일본 기업이 이를 거부하여 강제집행에 들어갈 경우, 일본이 한·일 투자협정 제14조에 의거해서 중재 압력을 가해 올 것이라는 점을 들었다. 그 결과 우리 국익에 심각한 손해를 입힐 수 있어서 권리남용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협정이 규정하고 있는 조약상의 의무는 내국민대우, 최혜국대우, 공정공평대우, 수용, 보상, 이행의무 부과 등과 관련된 것이어서, 기본적으로는 이번 사건과 관계없는 것들이다. 행여 이 가운데 공정공평대우와 관련해서 일본 기업의 정당한 기대 이익 보호 의무를 언급한 것이라 할지라도, 이 법익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투자자의 기대 형성이 정당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일본 투자자에게 배상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것임을 명시적으로 확인한 적이 없을 뿐더러, 투자 유치국의 사법 판결은 공정공평대우 의무 위반의 시비 대상이 될 수 없다는 판례도 있어서, 식민지 시기 불법 행위로 인한 배상 문제에 이 협정을 적용하는 것은 억지 내지는 지나친 비약이라고 할 수 있다.

  재판부가 권리남용의 근거로 삼은 것들이 또 있는데, 국제사법재판소와 미국 등 국제사회 여론이라는 다양한 경로로 일본의 압박이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국제사법재판소 제소는 한국의 동의 없이 일본이 독자적으로 할 수 없는 것이어서 논의조차 필요 없으며, 미국이 일방적으로 한국에 대해서만 압력을 행사할 것이라는 전망 또한 한·일 협상 전반에 대한 이해 부족에 더해 시대착오적인 국제사회 인식에서 나온 자기비하일 뿐이다. 미국은 한·일 수교 협상 과정 전반에서 배상과 관련해서는 중립을 지키고 있었으며, 미국이 일방적으로 일본 편을 들어 한국에 압력을 가할 것이라는 우려는 재판부가 한·미·일관계를 여전히 위계적 질서로 보면서 스스로 약소국 의식에 갇혀 있다는 것을 드러내 보여줄 뿐이다. 

  엄연한 우리 영토인 독도를 ‘도서지역’으로 표기하고 있는 부분도 문제거니와, 독도 문제, 위안부 문제 등 다른 사안에서도 국제사법재판소에 끌려 들어갈 것을 우려하면서 설령 이 모든 쟁점에서 대한민국이 승소하더라도 얻는 것이 없거나 오히려 국제관계를 경색시켜 손해를 입는다고 기술한 부분에서는 아연실색할 뿐이다. 그동안 이 문제들을 둘러싸고 발생한 외교적 낭비를 고려할 때 승소가 가져오는 실익은 적지 않을 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에서 일본의 억지를 확인하여 대한민국의 위상을 강화할 수 있을 것이다. 마치 재판부는 국제사회에서 대한민국이 일본에 우위를 차지하는 것을 손해로 여기고 있는 것 같다. 또한 승소할 경우, 식민지 지배의 불법성을 국제 법정에서 최종적으로 확인함으로써, 식민지배 불법화의 국제레짐을 이끌어내는 명예로운 선도국의 위치에 설 수 있으며, 북·일 국교정상화의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여 납치일본인 문제에 고집하며 과거사 청산의 책임을 회피하는 일본을 압박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식민지배 불법화를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

  이미 법원 내에서도 이번 판결이 오판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황병하 광주고등법원장이 법원 내부 게시판에 이번 판결을 정면 비판하고 나선 것이다. 힘으로 다른 나라를 합병하는 식민지배의 문제는 약육강식의 사실로서 존재할 뿐, 식민지화의 방법을 다루는 국제법이 있을 수가 없는 현실에서 식민지배가 국제법상 불법인지 여부를 따지는 것이 난센스라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국제법의 현실은 식민지 지배 불법화의 단계에 들어서 있으며, 그 경향은 가속화하고 있다.

  1960년 유엔총회에서는 식민지와 식민지 인민에 독립을 부여하는 선언이 채택되었다. “외국에 의한 인민의 정복 지배 착취가 기본적 인권을 부인하는 것”이라는 것이 그 핵심이다. 식민지주의가 유엔헌장 위반이라는 인식은 한·일기본조약이 체결되는 1965년 시점에는 이미 확립되어 있었다. 2001년에 더반선언이 채택되었고, 그 14조에서 “발생장소와 시기에 관계없이 식민주의는 비난받아야 하며 그 재발은 방지되어야 함”을 확인하고 있으며, 99조에서는 노예제와 식민지주의로 인해 “수백만 명의 남녀노소에게 가해진 극심한 고통과 비극적 고난을 인정하고 이에 심히 유감을 표하며, 관련 국가는 과거 비극의 피해자를 기리도록 촉구하며, 발생한 장소와 시기에 관계없이, 그러한 행위는 비난 받아야 하고 재발은 방지하여야 함”을 확인하고 있다. 식민지주의 비난은 시간을 소급해서 적용가능하며, 재발방지를 위한 노력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배상 책임의 부과라는 점에서 일본의 배상 책임을 확인한 2018년 대법원 판결이야말로 이러한 국제사회의 상식에 자리 잡은 것이라 할 수 있다.

  나아가 한국에서 식민지 지배가 불법이라는 사실은 이러한 국제법 발달에 의거한 추상적 선언이 아니다. 그것은 1910년 한·일병합조약과 이에 이르는 1905년 조약이 불법이어서 성립하지 않았다는 역사적 사실에 기초한 것이다. 이 중에서도 1905년 조약이 문제다. 을사년에 체결되어 을사조약 또는 늑약이라고 불리는 이 조약은 이름조차 부여되지 않아서, 1905년 조약으로 칭할 수밖에 없다. 일본 외무성에 보관 소장되어 있는 조약의 원본에도 명칭이 붙여져 있지 않다. 1993년 일본 외무성은 국회답변을 통해 이 조약의 비준서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외교권이라는 주권의 가장 중요한 일부를 이양한 이 조약을 당시 고종황제는 승인한 적이 없다. 오히려 그것이 고종황제의 의사와 무관하게 체결되었다는 사실을 국제사회에 알리려는 노력이 전개되었다는 것이 역사적 사실이다. 최근에는 1906년 독일 빌헬름 2세에게 보낸 고종황제의 밀서가 발견되어 이러한 사실을 강화해 주고 있다.

  이미 잘 알려진 대로, 프랑스 국제법학자 프란시스 레이 교수는 1906년에 강압에 의한 대표적 국제조약으로 1905년 조약을 들어 무효를 주장했다.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는 1935년 국제연맹, 1963년 유엔총회가 1905년 조약을 무효로 인정한 사실을 확인했다. 조선일보 기사로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다. 이번 판결 재판부는 이러한 연구들과 그로부터 확인된 사실들을 무시하고 있다. 비법률적 비본질적 근거와 논리를 다수 동원하고 있는 재판부가 그 이면에서 보이는 것은 이와 같이 게으르고 불성실한 태도다.

  청구권협정의 자의적 해석

  결정적인 문제는 이 사건 피해자들이 제기한 손해배상청구권이 청구권협정에 의해 그 소권이 제한되는지 여부다. 그런데 이에 대해서는 아주 간단하고 명징한 대답이 있을 뿐이다. 즉, 청구권협정은 ‘손해배상청구권’을 다룬 적이 없기 때문에 청구권협정에 의해서는 그 소권이 제한되지 않는다. 청구권협정은 재산상 민사상의 권리를 다루었을 뿐, 그 해결은 정치적 해결이며, 일본 행동의 위법성 여부를 따진 것이 아니다. 

  1991년 일본 외무성 조약국의 야나이 슌지(柳井俊二) 조약국장은 청구권협정으로 소멸된 것은 외교보호권에 불과하며, 개인청구권은 국내법적 의미에서 소멸시킨 것이 아니라는 것이 일본의 공식적 입장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이에 따라 소송이 잇따르자, 일본 정부는 2001년 이후 청구에 응할 법률상의 의무가 소멸하여 거절할 수 있다는 것으로 입장을 바꿨다. 매우 기괴한 해석이다. 이번 사건 재판부가 2001년 이후 일본 정부의 해석을 받아들인 것인지 모르지만, 우리 정부 입장은 개인청구권은 소멸되지 않았다는 것으로 일관되어 있다.   

  재판부는 청구권협정에서 배상청구권이 실질적으로 다루어졌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한·일 협상 과정에서 배상과 보상을 구별하지 않았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1947년 조선은행이 조사를 개시하면서 일본의 불법적 행위로 인해 발생하는 ‘배상’ 청구권과 일반 청구권을 명확하게 구분하고 있었으며, 1951년 한일협상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부터 일관되게 배상과 보상을 구별하여, 청구권과 관련해서 우리 정부가 주장하는 것이 ‘보상’과 민사상 재산상 청구권에 불과한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었다. 우리가 일본에 요구했던 것은 반환(restitution)에 해당하는 것으로 배상(reparation)은 논외로 쳤던 것이다. 

  이는 2005년 민관공동위원회에서도 확인되었다. 재판부는 민관공동위원회에서 “위안부 문제와는 달리 강제동원 피해자의 손해배상청구권은 3억 달러 속에 포괄적으로 감안되었다”는 취지의 공식 의견이 표명되었다고 지적하고 있으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실제로는 민관공동위원회는 한·일 협상 과정에서 일본 정부가 강제동원의 법적 배상과 보상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적시하고, 우리가 요구한 것이 정치적 차원의 보상에 불과한 것이라고 하여 ‘배상’이라는 용어는 조심스럽게 회피되고 있다. 2005년 민관공동위원회 발표문에서 보다 더 중시되어야 할 것은 청구권협정이 “일본의 식민지배 배상을 청구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고, 샌프란시스코 조약 제4조에 근거하여 한·일 양국 간 재정적 민사적 채권 채무관계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있다는 점이다.

  재판부의 시대착오적 판단을 극복하기 위하여

  판결은 이와 같이 법리적 판단에서도 기초적인 오류를 범하고 있는 데 더해, 이와 별도로 정치적 외교적 판단 등 비본질적 이유를 들어 피해자의 소권을 부정했다. 그런데 이 부분에서는 사실 오인, 부정확하고 모호한 인용, 오타 등이 등장하고 있어 판결문의 신뢰성을 심각하게 저하시키고 있다. 이는 기일연장사유에 해당되는데도 오히려 기일을 앞당겨서 발표했다는 점에서 모종의 정치적 의도마저 느껴지게 한다. 

  나아가 재판부가 민사소송 원고의 권리를 인정하면 ‘대한민국의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및 공공복리’가 위태로워진다는 법리를 동원했는데, 이는 대한민국이 1919년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는 헌법 전문의 국가정체성을 부정하고,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보장할 국가의 의무’(헌법 10조)도 부정하며, 나아가 ‘헌법과 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하여 법률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헌법 27조)를 부정하고 있다. 이 부분에서는 재판부가 초헌법적 기구로서 딥스테이트(Deep-State)를 자임하고 있는 것 같아 심히 우려스럽다.

  그럼에도 국민의 기본적 인권보다 외국 정부와 외국 기업의 이익을 우선한 이번 판결을 은근히 반기는 사람들이 있다. 이번 패소 판결은 우리 내부에 존재하는 몰역사적 인식의 논리 부재와 가치 혼돈이라는 민낯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촛불혁명은 국익을 명분으로 개인의 권리에 제한을 가해 온 초헌법적 권위를 부정했다는 의미에서 혁명이었다. 재판부의 이번 판결이 촛불혁명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려는 시도가 아니길 바란다.

  각하 판결을 받은 강제동원 피해자들은 6월 14일 항소했다. 이 사건의 법적 정의는 항소심에서 사법부 판단을 통해 실현될 것이다. 그러나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실질적 구제는 법적 구제로만 실현되는 것도 아니고 그것으로 완성되는 것도 아니다. 재판부의 이번 시대착오적 판단은 불법적 식민지배로 인한 아픔을 극복하고 역사의 수레바퀴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려는 우리의 노력을 더욱 절실하게 한다.[끝]

정토회 부설 평화연구원 평화재단 제 259 호 2021년 6월 21일 (월)

평화재단 budgat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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