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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옷을 승가에 보시하시오

기사승인 2019.10.14  07:5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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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맛지마 니까야> ‘보시분석경’에는 참으로 기막힌 장면이 연출되고 있습니다. 세존께서 싸끼아국 까빨리와뚜의 니그로다 승원에 머무실 때, 세존의 출가 전 이모이자 계모였던 마하빠짜빠띠 고따미께서 새 옷을 손수 지어서 부처님께 올리려하자 벌어진 일입니다.

  “세존이시여, 이 옷을 세존을 위해 제가 손수 만들었습니다. 저를 애민이 여겨 새 옷을 받아주십시오.”
  “고따미여, 그것을 승가에 보시하십시오. 승가에 보시하면 나에게 공양하는 것이 되고, 승가에도 공양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부처님이 받기를 거절하시자 고따미께서 똑같은 말로 두 번 더 받아 주시길 간청했고, 세존께서도 거듭 거절하셨습니다. 그러자 곁에서 이를 지켜보던 아난다 존자가 참다못해 부처님께 이렇게 간청합니다.

  “세존이시여, 마하빠자빠띠 고따미께서 가져온 옷을 받아주십시오. 고따미는 세존의 이모이자 양모입니다. 그리고 세존을 낳아주신 친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양육자이자 수유자로서 세존께 많은 은혜를 베푸시지 않았습니까? 지금은 고따미께서 세존을 인연으로 삼보에 귀의하고, 오계를 수지하고, 삼보에 완전한 믿음을 구족했으며, 사제법(四諦法)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자기가 낳지는 않았지만 젖을 물려 키운 아들에게 새 옷 한 벌 입히고 싶어서 손수 바느질한 어머니의 정성을 모르실 리 없을 터인데, 이를 매몰차게 세 번씩이나 거절하시는 부처님이 얼마나 야속스러웠던지, 아난다 존자까지 나서서 부처님의 몰인정을 질책하고 있는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집니다.
  그리고 서운했던 고따미께서 부처님에게 따지는 장면을 <대반열반경>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내(세존)가 마하파사파제 교담미(고따미)에게 말하기를, '나에게 공양하지 말고 승가에 공양하라. 승가에 공양하면 삼보에 구족하게 공양함이 되리라.'하니, 마하파사파제가 대답하되 '승가에는 부처님도 없고 법도 없는데 어찌하여 승가에 공양하면 삼보에 구족하게 공양하는 것이라 하십니까?'하기에, 내가 대답하기를, '내 말을 따름은 부처에게 공양하는 것이고, 해탈을 위한 법에 공양하는 것이며, 승가가 받으니 승가에 공양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보시를 할 때 여러분은 어디에 하십니까? 아마도 부처님(불전함)께 드리던지, 스님께 드리지 않으셨나요? 앞으로는 부처님 말씀대로 꼭 승가에 보시하십시오. 승가에 보시하라는 것은 공적으로 보시하라는 말씀입니다. 공적인 보시라야만 청정의 공덕이 생기고, 그것을  누구도 함부로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스님들이 사사로이 보시를 받게 되면, 더 받으려는 탐욕이 생기게 되고, 보시하는 사람들을 차별하는 마음이 생겨나고, 보시물을 법답지 않게 처분하는 잘못을 범하는 빌미를 주게 된다고 부처님은 경계하셨습니다. 그러니 앞으로는 보시를 꼭 종무소에 하고 영수증도 받아두어야합니다. 스님들이 부처님처럼 사심이라고는 조금도 없이 청정한 삶을 사시도록 해야 하고, 이런 청정승가는 보시를 바르게 하는 재가가 만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보시를 많이 해서 승가가 부유해야 합니다. 종단이 부자여야 합니다. 그래야 여러 가지 불사도 할 수 있고, 스님들도 걱정 없이 수행에 매진할 수 있습니다. 절대로 스님이 부유해서는 안 됩니다. 스님이 부유하다면 이미 탐욕의 나락에 빠진 것입니다. 우리가 보시를 잘못하여 청정한 스님들을 타락하게 하는 잘못을 저질러서는 아니 되지요. 보시가 잘못 쓰이면 보시한 사람에게도 그 과가 미친다는 것이 불교의 인과법이 아닙니까? 그리고 부처님은 엉뚱한 곳에 보시하는 신도를 ‘천한 신도’라고 하셨습니다.(<앙굿따라니까야> ‘천함 경’)

  그런데 안타깝게도 한국불교는 절은 가난한데 부자인 승려가 많습니다. 종단은 더욱 가난해서 불사다운 불사를 엄두도 못 냅니다. 예를 들어 신도시에 교회는 무수히 들어서는데 사찰은 볼 수가 없어요. 이런 대형불사는 당연히 종단이 해야 하고, 그러자면 종단의 한해 살림이 수천억은 되어야 가능합니다. 그 정도의 예산은 장자종단의 규모로 보면 족히 확보할 수가 있을 것으로 보이는데도 현실은 강남의 대형교회에도 미치지 못하는 실정입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가 승가에 보시한 돈이 어떻게 쓰이는 지에 관심을 가지는 일입니다. 회계가 투명하지 않은 곳에는 절대로 보시해서는 안 됩니다. 지금은 무주상의 가치보다도 투명성의 가치가 훨씬 크기 때문이지요. 적어도 우리가 엉뚱한 곳에 보시하는 천한 신도는 되지 않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박/호/석/의/노/심/초/사
불교포커스 여시아사(如是我思)

세상에 그 어떤 종교나 철학보다도 불교가 수승한 것은 보편적이고 객관적이며 과학적 추증성까지 지닌 우주만유의 진리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한국불교는 천 년이 넘게 우리의 정신과 삶의 바탕이 된 비교우위의 역사와 문화적 전통도 가졌습니다. 그럼에도 최근 우리불교가 추락하고 있는 현실이 이해되지 않아 답답해 하면서 '부처님은 어떻게'를 염두로 이 문제를 풀어보고자 합니다.

필자는 자연과학자로 프랑스에 유학하고 농협대학 교수로 재직하였다. 대학생 시절 洪幻星 법사를 은사로 불교에 입문하여 古庵,九山, 杲山스님에게 수계하고, 修不스님에게 간화선을 배웠다. 퇴임후에는 인재양성만이 불교를 살리는 길이라고 군법회에 전념하면서, <니까야>공부와 불교 걱정으로 소일한다.

박호석_전, 대한불교삼보회 이사장 phoseo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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