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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누가 전하고 인가하는 것이 아니다

기사승인 2019.08.17  10:4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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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처님의 가르침의 진수인 불립문자(不立文字) 언어도단(言語道斷)의 심법(心法)이 소위 삼처전심(三處傳心)을 통해 마하가섭(摩訶迦葉) 존자에게 전해진 다음에 달마(達摩)조사에 이르기 까지 28대가 인도에서 전승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달마조사가 중국에 와서 선불교의 초조(初祖)가 되고, 다시 혜가(慧可)→승찬(僧璨)→도신(道信)→홍인(弘忍)으로 이어진 다음에 육조 혜능(惠能)에서 여러 분파로 번창했다는 것이 선불교에서 주장하는 이른바 법맥(法脈)이고 전등(傳燈)입니다.

  한국불교의 대표종단인 조계종은 신라 때 도의(道義,784입당) 국사가 중국에 유학하여 육조혜능의 법손(法孫)인 마조도일(馬祖道一)의 제자였던 서당지장(西堂智藏,735~814)의 법을 이었다고 해서 그를 종조(宗祖)로 모십니다. 그리고 고려 때 태고보우(太古普愚,1301~1382) 국사는 중국 선불교의 적통인 석옥청공(石屋淸珙)의 법을 계승하였기 때문에 선불교의 종가(宗家)가 우리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선불교에서는 스승과 제자로 이어지는 사자상승(師資相承)을 통해 법륜(法輪)이 상전(常轉)했다고 합니다. 스승이 제자의 깨달음을 확인해서 인정하는 것이 인가(印可)고, 그렇게 스승의 법이 제자에게 전해졌다고 해서 전법(傳法)이라 하지요. 그리고 이런 사실을 증명하여 스승이 제자에게 내리는 글이 바로 ‘전법게(傳法偈)’입니다.

  그런데 경전에서 살펴보면 법은 누가 전하고 인가하는 것이 아니라 공부하다 보면 더 이상 배울 것이 없음을 자기가 스스로 아는 것입니다. 즉, 계정혜 삼학을 닦아 어디에도 걸림이 없는 자유를 얻으면 스스로 해탈을 이루었다는 앎과 봄이 생겨나고, 바로 이 해탈지견(解脫知見)을 갖추어야만 비로소 공부를 마쳤다고 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중요한 것은 이 구경지(究竟智)의 검증과 인가는 스승이 아니라 대중이 한다는 사실입니다. 

  “비구들이여, 어떤 비구가 ‘나는 태어남은 끝났고, 청정한 범행을 마쳤으며, 해야 할 일을 끝내서 다시는 이런 상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안다’고 구경지를 선언하면, 그대들은 그의 말을 인정하거나 비난하지 말고 이렇게 물어야한다.”(<맛지미니까야> ‘여섯 가지 검증의 경’)

  부처님께서는 누가 깨달음을 이루었다고 하면 다음 여섯 가지 질문으로 그가 올바로 깨달았는지를 확인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 여섯 가지는 ⓵자기 자신이 보고 듣고 지각하고 인식한 것인가, ⓶보고 듣고 지각하고 인식한 것에 속박되고 있지는 않는가, ⓷오온(五蘊)에 대한 취착을 버렸는가, ⓸육계(六界)를 자아로 여기거나 자아가 의존하는 것으로 여기지는 않는가,  ⓹육입처(六入處)에 욕탐을 버렸는가, ⓺나와 나의 소유라고 하는 무의식을 제거했는가 등입니다.

  한마디로 탐진치 삼독을 모두 버리고 그의 속박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났는지를 물으라는 것이지요. 그리고 부처님은 그 질문에 대한 모범답안까지 말씀하시고, 만약 그가 그에 맞게 대답하면 훌륭한 수행자를 만나게 된 것을 인정하고 기뻐한 다음에, ‘우리에게 커다란 축복입니다’라고 찬탄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바라이 죄라는 것이 있습니다. 살생·음행·도적질·큰 거짓말을 하면 승가에서 추방되는 벌을 받는데, 여기서 말하는 큰 거짓말이 깨닫지 못하고 깨달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수행자가 함부로 깨달았다고 할 수가 없고, 자신의 해탈지견이 올바른지를 스스로 면밀하게 살펴야 하는 것입니다.  

부산 해운정사의 불심인조사전_부처님을 중앙으로 불심인을 계승했다는 마하가섭, 보리달마, 육조혜능, 임제의현, 태고보우, 경허성우, 혜월혜명, 운봉성수, 향곡혜림, 그리고 제79대조 진제법원 스님의 석상

한국불교에는 깨달았다는 분들이 있습니다. 스스로 깨달았다고 하지는 않더라도 스승으로부터 전법게를 받은 분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그들 가운데 삼독을 여읜 성인을 뵙기란 참으로 어렵습니다. 깨달았다는 분이 막행막식을 하는 경우는 있어도 부처님 같이 사시는 분을 보기가 어렵습니다.

  우리는 그분들에게 깨달음을 확인하는 여섯 가지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아니, 질문에 앞서 이 여섯 가지와 그의 행동거지가 일치하는지를 먼저 살펴야합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살피라는 것이 부처님의 당부이기 때문이지요. 심지어 부처님은 당신 스스로도 올바르고 완전하게 깨달았는지를 살펴보라고 제자들에게 그 방법까지 일러주며 당부하셨습니다.(<맛지마니까야> ‘관찰자의 경’)

  불교의 구경인 열반은 모든 번뇌가 완전히 사라진 적정(寂靜), 적멸(寂滅)의 경지를 말합니다. 갈애와 탐욕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난 해탈(解脫)입니다. 바로 이 해탈의 자각, 즉 해탈지견이 궁극의 깨달음이라면 화두참선에서의 깨달음은 열반으로 가는 과정에 사제법(四諦法)을 체험하는 단계일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무상(無常)·고(苦)·무아(無我)를 체득하여 팔정도의 처음인 정견(正見)을 확고하게 세우는 과정입니다. 그러니 화두공안을 타파했다고 하더라도 팔정도를 닦아 여섯 가지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면 구경지가 아닙니다.

박/호/석/의/노/심/초/사
불교포커스 여시아사(如是我思)

세상에 그 어떤 종교나 철학보다도 불교가 수승한 것은 보편적이고 객관적이며 과학적 추증성까지 지닌 우주만유의 진리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한국불교는 천 년이 넘게 우리의 정신과 삶의 바탕이 된 비교우위의 역사와 문화적 전통도 가졌습니다. 그럼에도 최근 우리불교가 추락하고 있는 현실이 이해되지 않아 답답해 하면서 '부처님은 어떻게'를 염두로 이 문제를 풀어보고자 합니다.

필자는 자연과학자로 프랑스에 유학하고 농협대학 교수로 재직하였다. 대학생 시절 洪幻星 법사를 은사로 불교에 입문하여 古庵,九山, 杲山스님에게 수계하고, 修不스님에게 간화선을 배웠다. 퇴임후에는 인재양성만이 불교를 살리는 길이라고 군법회에 전념하면서, <니까야>공부와 불교 걱정으로 소일한다.

박호석_전, 대한불교삼보회 이사장 phoseo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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