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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법의 대가는 받을 수 없다

기사승인 2019.08.04  17:3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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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즈음 일반인들이 참석하는 법회도 법사스님이 법좌에 앉으시면 ‘덕 높으신 스승님 사자좌에 오르사’로 시작하는 청법가로 법을 청합니다. 이는 청법게를 노래로 합창하는 형식만 다르지 출가한 스님들이 스승에게 법을 청하는 전통적 청법의식과 별반 다를 것이 없습니다.
 
  사실, 청법은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이루시고 열반에 들려하시자 사함빠디(제석천)가 이를 말리며 설법을 간청했던 것에 연유합니다.

  “세존이시여, 세상의 존귀한 임께서는 진리를 가르쳐 주십시오. 올바로 잘 가신 임께서는 진리를 가르쳐 주십시오. 본래부터 눈에 티끌이 거의 없는 중생들이 있는데, 그들은 가르침을 듣지 못해서 쇠퇴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가르침을 들으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진리를 이해하는 이도 있을 것입니다.”(<쌍윳다니까야> ‘하느님의 청원에 대한 경’)

  자리에서 일어나신 부처님은 당신의 법을 알아들을만한 옛 다섯 도반을 찾아 녹야원에서 최초의 설법을 펴기 시작하여 열반하기까지 무려 45년 동안을 그야말로 설법으로 일관한 삶을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부처님의 설법은 정말 시도 때도 없이, 아무데서나 대상을 가리지도 않았지요. 지금처럼 높은 법좌를 마련하고 청법의 예를 갖춘 모습은 초기경전의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높고 낮음이 없이 부처님이 중앙에 앉으시면 뒤쪽엔 제자들이 앉고, 재가자는 부처님과 마주보고 둘러앉았습니다. 또 대부분의 설법은 숲이나 회당, 그리고 강당에서, 수시로 제자들을 부르시거나 찾아와 묻는 이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예를 들어, 하룻밤을 도공집 객사에서 함께 보낸 뿍꾸싸띠에게는 부처님이 먼저 말을 걸어 설법하시고, 병든 제자나 외따로 수행하는 제자들에겐 친히 병석이나 수행처로 찾아가서 설법하셨지요. 심지어는 설법을 할 수 없는 때인 탁발 중에도 가르쳐야할 제자를 곁에 부르거나, 질문을 허락하십니다. 그리고 외도들은 물론, 살인마 앙굴리마라도 직접 찾아가서 설법하고,  특히 당신의 임종을 앞둔 최후의 순간까지도 제자들에게 하신 설법은 참으로 감동과 희열이 넘칩니다.  

  그런데 부처님이 입멸하신 다음부터 설법에 권위와 허세가 붙기 시작했지요. 많은 대승경전에서 그렇게 확인이 되고, 특히 출가자들의 계율인 <사분율(四分律)>에 설법을 하지 말아야 할 때와 장소, 그리고 대상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밝혀놓은 것을 보면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 용모나 차림새가 단정하지 못한 사람, 수레나 말을 타고 있는 사람, 병이 아닌데 누워 있는 사람, 설법하는 이의 뒤나 위에서 청법할 때는 설법을 금하고 있지요. 나아가 중국선불교에서는 한 팔을 잘라 바쳐 법을 청하고, 섣불리 법을 청하면 몽둥이로 맞거나 고함을 듣는 형태로 발전합니다.

사진제공_장명확작가

  그런데 우리가 경전에서 눈여겨봐야 할 대목은 설법의 대가를 부처님은 철저히 거절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쌍윳따 니까야>에는, ‘사문들은 일도 안하고 얻어만 먹는다.’고 책망하던 바라문 까시가 ‘나도 밭을 갈고 씨를 뿌린 뒤에 먹는다.’는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서 올린 유미죽을 거절하셨고, 또 바라문 악기까와 쑨다리까의 공양도 같은 이유로 거절하셨습니다. 올바로 보는 이, 깨달은 이에게 설법의 대가는 옳지 않고, 진솔한 삶이 아니라는 것이 그 이유입니다.  

사실, 설법은 단순한 지식전달이 아니라 중생제도를 의미합니다. 그러니 이를 대가로 무엇을 받는다는 것은 결코 안 될 말입니다. 세간에서조차 장기(臟器)를 돈으로 사고 팔 수 없는 것이 생명윤리가 아닙니까? 그래서 부처님은 ‘나는 물질적인 것을 바라면서 가르침을 설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하면서 설법해야한다고 제자들에게 누누이 강조하셨습니다. 

  그런데 요즈음 대부분의 스님들은 설법을 하고 법문비를 받습니다. 게다가 최근 조계종에서 정부의 종교인 과세방침을 검토하면서 승려의 과세대상 소득항목에 법문비를 공식적으로 포함시킨 모양입니다. 부처님은 거절하신 설법의 대가를 그 제자들은 마지못해 받는 것도 아니고 공식적으로 받겠다는 것이지요.  

  매주 법사를 초청하여 일요법회를 열어야 하는 삼보법회 살림을 맡아보면서 경험했던 일입니다. 전북 익산의 사자굴에 사시는 한 노승은 설법을 대가로 주는 어떠한 보시도 받을 수 없다고 교통비는 물론 법회 후 대중공양까지도 사양하시는가하면, 이순(耳順)이 넘은 세납에도 쟁반 나르며 손님 접대하시는 경기도 양주의 한 비구니 교수스님은 법문비는 받을 수 없다고 차비를 덜어내고 돌려주십니다.

  요즘 세태엔 참으로 희유한 광경이지만, 그래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올곧게 실천하는 스님들이 계시다는 것이 참으로 다행이고 희망입니다. 모든 스님들이 근엄한 청법이 아니더라도 부처님처럼, 어디든 찾아가 중생제도 하는 그런 불교가 되길 간절히 소망해봅니다.

                                                 

박/호/석/의/노/심/초/사
불교포커스 여시아사(如是我思)

세상에 그 어떤 종교나 철학보다도 불교가 수승한 것은 보편적이고 객관적이며 과학적 추증성까지 지닌 우주만유의 진리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한국불교는 천 년이 넘게 우리의 정신과 삶의 바탕이 된 비교우위의 역사와 문화적 전통도 가졌습니다. 그럼에도 최근 우리불교가 추락하고 있는 현실이 이해되지 않아 답답해 하면서 '부처님은 어떻게'를 염두로 이 문제를 풀어보고자 합니다.

필자는 자연과학자로 프랑스에 유학하고 농협대학 교수로 재직하였다. 대학생 시절 洪幻星 법사를 은사로 불교에 입문하여 古庵,九山, 杲山스님에게 수계하고, 修不스님에게 간화선을 배웠다. 퇴임후에는 인재양성만이 불교를 살리는 길이라고 군법회에 전념하면서, <니까야>공부와 불교 걱정으로 소일한다.

박호석_전, 대한불교삼보회 이사장 phoseo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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