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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년만에 비구계포살을 하다

기사승인 2019.07.26  17:0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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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가(Saṅgha)라는 단어는 부처님이 처음 사용하신 단어가 아니라 당시 인도사회에서 사용되던 말이다. 부처님은 물론 그 당시 육사외도를 이끄는 지도자들도 상기(saṅghī) 가니(gaṇī)라고 불려지고 있었는데 그 것은 무리(Saṅgha,gaṇa)의 지도자라는 뜻이다. 그러나 부처님은 상가(Saṅgha)라는 단어를 특별하게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상가는 4인상가, 5인상가, 10인상가, 20인상가, 20인이상의 상가라는 5종류의 상가만을 인정하셨고 규모에 따라 역할이 달라지게 만드셨다. 2~3인의 모임은 별중(gaṇa)이라고 불렀다.

상가는 승가(僧伽),중(衆). 화합중(和合衆), 화합승(和合僧)등으로 번역되었는데 특히 화합중(和合衆), 화합승(和合僧)으로 번역된 것은 정기적인 포살과 자자 그리고 대중갈마로 ‘청정과 화합’을 유지하는 단체임을 말한다. 그러므로 재가자가 승가에 포함되는 일은 가능하지 않았다. 만일 재가자도 승가에 포함된다면 재가자 4인이 모이거나 비구 2인과 재가자 2인이 모여도 승가라고 인정해야 할 것이다. 출가자 재가자가 모여서 포살과 자자를 하고 재가자에게도 멸빈이나 제적이나 공권정지를 내리는 갈마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부처님 당시부터 지금까지 어느 승가에서건 재가자에게 비구들의 포살에 참석할 자격을 주지 않았고 지금도 주어지지 않고 있다. 구족계를 받지 않은 이에게 구족계 갈마를 한다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이렇게 조금만 생각해보면 승가에 재가자가 포함되는 것은 터무니 없는 주장임을 알 수 가 있다.
 

사진제공_장명확작가

승가에 재가자가 포함된다는 주장을 하게 된 것은 출가자와 재가자를 다 같이 보살이라 부르며 출가자와 재가자가 한 자리에서 같이 보살계를 받고 있는 영향이 있을 것이다. 구족계와 보살계는 내용적으로 양립할 수 없는 것임에도 조계종 종헌 제8조에는 ‘본종 승려는 구족계와 보살계를 수지해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어 있다. 또 한가지는 초기경전을 번역하는 사람들에게 책임이 있다.

각묵스님은 “승가로 음역한 상가(Saṅgha)는 같은 목적을 가지고 함께 모인 집단을 뜻하며 불교에서는 좁게는 비구 비구니의 승단, 넓게는 비구 비구니, 청신사청신녀의 사부대중의 모임을 뜻한다.”고 주장하고 있다.(디가니까야 1권(2007년) p.80주석)

전재성거사는 “재가자를 포함시킬 때 승가라는 말 대신에 사부대중이라는 말을 쓴다. 그러나 승가안에 재가자가 포함되지 않는다고 명시적으로 규정할 수는 없다. 사방승가 안에는 재가자도 당연히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디가니까야1권 해제 41p)

이렇게 초기경전을 번역하고 있는 사람들조차 재가자가 포함되는 승가를 말하고 있으니 지금의 재가자들이 따라서 혼란스럽게 된 것이다. 재가자들의 외호없이 출가자들이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사방승가에 재가자가 포함되어야 한다는 논리도 타당하지 않다. 출가자와 재가자가 서로 의지해 있고 재가자가 승가를 외호하고 있다는 사실과 재가자가 승가에 포함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사방승가도 현전승가의 집합일 뿐이므로 사방승가라고 해서 재가자가 포함되지 않는다. 재가자는 꼬삼비 시민들처럼 사부대중의 일원으로서 승가를 외호하고 비판하는 세력으로 남아 있어야 한다.
 
전재성거사는 또한 불자가 삼귀의 할 때 승가에 귀의하는 것이 아니라 승보에 귀의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승보에는 비구비구니승가가 모두 포함되는 것이 아니라 예류향에서부터 열반에 도달한 아라한 까지의 사쌍팔배의 참사람을 의미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전재성거사의 주장과는 다르게 초기경전에서 일반 비구승가에 귀의함으로서 불자가 되는 문장이 수없이 나타나고 있다. “저는 이제 세존께 귀의하옵고, 법과 비구승가에 귀의합니다.(Esāhaṃ,bhante, bhagavantaṃ saraṇaṃ gacchāmi dhammañca bhikkhusaṅghañca) 율장에서도 삼귀의로서 구족계 주는 것을 허용하며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상가에 귀의합니다.(Saṃghaṃ saraṇaṃ gacchāmi)”를 세 번 복창하게 시키고 있다. 이때 귀의 대상은 분명히 승보(Saṅghe ratana)가 아니라 상가(Saṅgha)이다.
 
어떤 사람들은 조계종 종헌에 ‘본종은 승려(비구 비구니)와 신도(우바새 우바이)로서 구성한다’고 되어있는 것을 보고 재가자도 승가에 포함된다고 말한다. 이것은 ‘승가’와 ‘승보’를 구분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교단(parisa)과 승단(Saṅgha)도 구분하지 못하여 생긴 오해이다. 승가안에 ‘승보’가 포함되어 있듯이 사부대중(catasso parisā)이 참여하는 ‘교단’안에 ‘승단’이 포함되어 있다.

재가자들이나 출가자들이 승가가 무엇인지 모르는 것은 우리나라에서는 승가가 승가운영의 원리대로 운영되어 전승되지 못해오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출가한 초발심자들에게 계율을 가르치지 않고 포살을 하지 않아 출가자들이 승가가 어떻게 운영되어야 하는지 아는 사람도 거의 없고 그런 승가도 찾기 힘들다. 요즘 승가라는 단어의 쓰임도 협소 해졌다. ‘중앙승가대학교’에서의 승가라는 단어는 ‘스님들’이 다니는 대학교, ‘승가교육’에서의 승가는 ‘스님들’을 위한 교육등 단순히 승가를 ‘스님들’로 이해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스님들께 귀의합니다’라고 ‘승가’를 ‘스님들’로 번역해 놓고 이것이 왜 잘못된 것인지를 모른다. 잘못된 것을 모르니 지적을 받아도 고치질 않는다.
 
승가의 운영원리는 율장에 포살과 자자하는 법, 갈마하는 법, 은사스님 모시는 법, 객스님 대하는 법, 탁발하는 법, 꾸띠를 만드는 방법 등 250계율로 나타나고 있다. 초기에 승단이 규칙적으로 모인 것은 포살을 시행되고 나서부터다. 보름마다 포살을 하게 됨으로서 스님들이 보름마다 특정한 장소에 모이게 되었는데 멀리서 오는 사람들은 하루에 도착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래서 보통 사람이 하루에 걸어서 다녀올 수 있는 거리를 기준으로 지역을 정하여 그 지역안에 머무는 스님들이 모여 포살을 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현전승가’이며 그 특정지역을 정하는 것을 결계(結界)라 한다.

요즈음은 지역의 모든 현전승가가 종단이라는 이름으로 통합되어있고 교통의 발달로 어디든지 하루에 다녀올 수 있으므로 종단자체가 현전승가가 되었다. 그 증거로서 종단은 종단을 대표하는 종정과 총무원장을 선출하고 예전에 현전승가에서 행하던 수계, 교육, 징계, 안거관리, 승적관리, 주지인사, 재산관리등의 모두 일을 종헌종법이라는 제도안에서 수행하고 있다.

사진제공_장명확작가

복잡한 승가의 운영원리를 여섯가지로 간단하게 정리한 것이 육화경(六和敬)인데 꼬삼비경(M48)으로 남아있다. ①‘동료에게 자애롭게 행동한다.’ ② ‘동료에게 자애롭게 말한다.’ ③‘동료에게 자애롭게 사유한다.’ 이상 3가지가 먼저 언급된 것은 평소에 구성원들끼리 자비로운 마음과 따듯한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지내야 나머지 균등하게 나누는 일이나 같은 견해를 갖는 것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④ ‘동료들과 균등하게 나눈다.’는 것은 승가의 소유물은 누구라도 평등하게 사용해야 하는 공유물이라는 뜻인데 부처님은 발우안에든 것일지라도 평등하게 나누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⑤ ‘계를 구족하여 머문다.’는 것은 정기적으로 포살과 자자를 행하여 청정한 자정능력을 갖추라는 의미이며 ⑥ ‘바른견해를 구족하여 머문다.’는 것은 자주모여 법담탁마로 바른견해를 갖추라는 의미이다. 부처님은 바른견해로 화합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요소이고 총체적인 것이라고 설명한다. 바른견해가 있어야 불자가 될 수 있고 발심수행을 할 수 있다. 바른견해가 있어야 동료 수행자들의 소중함을 알고 ‘상가’의 소중함을 알게되며 동료들과 보시물을 균등하게 나누려고 할 것이다.

이렇게 여섯가지 운영원리로 승가가 운영될 때 스님들은 개인소유물이 없이도, 노후를 걱정하지 않고도, 각자도생하지 않고도, 수행에 매진하며 승가의 주인으로 살아갈 수 있다. 승가에 귀의 한다는 것은 자신의 아집과 욕심을 내려놓고 대중을 공경하며 공심(公心)으로 살겠다는 약속이다. 그러므로 대중을 통솔해 보겠다는 마음을 가진 자, 자리와 권력을 얻기 위해 돈선거를 하는 자, 계파를 만들어 이득을 취하려는 자들은 승가의 화합을 깨는 자들이지 진정으로 승가에 귀의한 것이 아니다.

이번 백장암선원에 하안거를 나면서 승가의 의미를 되새겨 볼 기회를 갖게 되었다. 이곳 대중들은 매일 법당에 참석하여 사시마지를 올리고, 7일마다 경전을 읽고 법담탁마하고, 보름마다 포살을 진행하고 있다. 사중살림은 매달 공개하고, 사찰의 중요한 결정은 모든 대중이 참여하여 공개적으로 결정한다. 저녁에는 공양간을 개방하지 않아서 대개의 스님들은 오후불식을 실천하고 있고 객스님이 오면 결제 기간임에도 법랍에 따라 좌차를 정하여 앉게하고 하룻밤이라도 불편없이 머물다 가도록 배려하고 있다. 새벽과 저녁에만 정진죽비를 치고 나머지 시간은 자유롭게 정진을 하고 있어 자발적으로 공부하려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다.

백잠암 전경 (사진제공 : 허정스님)

몇몇 스님들이 백장암에 모여 부처님이 제정한 승가의 운영원리에 의해서 살아보려는 마음을 내어 살기 시작 한지 3년째로 접어든다. 덕분에 나는 오랜만에 어머니 같은 승가의 품에 안겨 안거를 나는 경험을 하게 되었고 비구계 받은지 26년만에 대중들과 함께 비구계로 포살하는 경험을 가졌다. 보름마다 가꾸고 돌봐야 할 마음 밭을 26년 동안이나 돌보지 않았으니 얼마나 많은 잡초와 넝쿨로 밭이 황폐해 졌을까? 이곳에서 살면서 내가 살아온 종단이 이름만 승가라고 불렸지 내용적으로는 '승가'에서 살아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포살을 하지 않고 살았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와 연관된 승가의 전통이 사라진 것이 문제다. 현재 종단의 현실은 보시물이 균등하게 나누어지지 않아 승려들 사이에 빈부차이가 심하고, 자유로운 발언권이 보장되지 않고 있으며, 어느 사찰에서나 편히 머물 수 없고, 가사와 승복을 개인이 구입해야하고 몸이 아프면 속가에 가서 치료해야 한다. 승가가 승가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재 한국불교가 안고 있는 모든 문제의 근원일 것이다. 승가는 구성원들끼리 얼굴을 마주보고 의사를 결정하는 직접민주주의공동체이고 포살과 자자 등으로 자정능력을 갖춘 화합공동체이고, 집단지성이 발휘되는 수행공동체이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법하고 계승하는 호법공동체이며 누구나 찾아와서 쉴 어 갈 오아시스같은 안식처이며 귀의하고 보시하면 큰 공덕을 얻는 공덕공동체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1700년 한국불교의 전통을 계승한 물질적 정신적 자산으로 충분히 이러한 승가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승가의 의미를 바로 안다면 누구라도 승가공동체 복원에 동참하려고 할 것이다.

백장암이 그 길에 첫 걸음을 떼고 있다.

허정스님_전 천장사 주지 whoam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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