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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곳에 정주(定住)하지 말라

기사승인 2018.12.17  08:2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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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불교를 대표하는 대한불교조계종의 종법에는 공찰(共刹)과 사찰(私刹)의 구분이 있습니다. 절이라고 해서 다 같은 절이 아니라 공공의 절과 개인 절이 있는 것이지요. 공찰은 오래 전부터 종단의 재산으로 공적으로 관리하는 절이고, 사찰은 개인이 창건을 해서 종단의 재산으로 등록은 하지만 관리권을 창건주가 갖도록 한 절을 말합니다.
 
그래서 승려가 제 절을 가지면 평생 그 절의 주인이 되고, 또 그 권한을 자기 마음대로 정하여 상속할 수가 있으니, 비록 종단에 소속되어는 있지만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주지라는 실권을 종신토록 유지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그 재산을 물려받기를 원하는 상좌의 극진한 봉양까지 받을 수가 있어서 승려들 사이에는 오래 전부터 제절이나 토굴 갖기가 유행입니다.

그렇게 절이 제 것이다 보니, 다른 문중이나 힘 있는 승려에게 빼앗길까 염려되어 세속의 법으로 보호하거나, 창건주가 죽더라도 그의 뜻대로 할 수 있도록 종법을 고칩니다. 제 소유이니 늘 더 가지려고 각종 불사가 그칠 줄을 모릅니다. 신도가 불자들의 기도·수행·교육·포교를 위하여 마련한 절이 오로지 창건주의 사찰(私刹)이 되다보니 그의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은 거기서 하룻밤을 묵기조차 어렵지요. 

그런데 불가에서 제절이라는 것이 말도 안 되지만, 수행자가 한 곳에 머물러 사는 것조차도 부처님은 크게 경계하셨습니다. 특히 정주하는 것을 <앙굿따라니까야>에서는 ‘위험’이라고까지 말씀하십니다.

“비구들이여 한 곳에 오래 머물면 다섯 가지 이러한 위험이 있다. 물품과 약품이 많아서 축적하게 되고, 소임에 재주가 있어 해야 할 일이 많게 되고, 재가와 출가를 가릴 것 없이 섞여 지내고, 부적절하게 재가자들과 교제하며 지내고, 그곳을 떠날 때는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오래 머묾의 경’)

“비구들이여, 한곳에 오래 머물면 다음 다섯 가지의 위험이 있다. 거처에 인색하고, 신도에 인색하고, 이득에 인색하고, 덕에 인색하고, 법에 인색하다.”(‘인색의 경’)

최근에 한국불교에서 모범적인 전법과 포교 역량을 보이던 한 도심사찰에서 창건주의 문제로 교계에 큰 충격을 준 일이 있습니다. 또 종파나 절에서 발생하는 분란의 대부분도 서로가 제 것이라는 밥그릇 싸움입니다. 탐욕을 버려야 하는 수행자들이 오히려 재물을 탐하여 서로 빼앗고 싸우는 것이지요. 그리고 요즘 들어 부쩍 승려들이 거처와 돈에 인색하고, 신도에게 너그럽지 못하고, 설법을 하지 않는 것도, 모두가 정주하지 말라는 부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아서 그런 것입니다.

공찰이든 사찰이든 절의 주인은 신도입니다. 승려는 단지 관리인일 뿐. 그런데 지금은 주객이 바뀌었어요. 실제 주인들은 어리석어서 주인노릇을 못하고, 심지어 승려의 탈을 쓴 무리들이 절집에서 주인행세를 하며 도박을 해도, 처자식을 숨겨두고 호위호식을 해도, 그리고 패거리를 만들어 자기들 입맛대로 종권을 유린해도 강 건너 불 보듯 나 몰라라 합니다. 

그런데 정작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제절이라고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상당수는 공찰에서 횡령한 자금과 불자들의 시주금이 사찰건립에 투입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삼보정재를 사유화하는 셈이지요. 사정이 이러니 공찰 주지 몇 번하고 나면 제절 갖는 것이 당연하고, 그리 못하는 승려는 바보 취급 받기 일쑤입니다.   

그래서 공찰 주지자리 얻으려고 금전이 오가고, 그 인사권을 쥔 본사 주지나 총무원장 선거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자금이 필요하다는 것이 중론입니다. 그리고 엄밀히 살펴보면 사찰만 그런 것이 아니라 수백, 천 년을 내려온 공찰조차도 실제로는 문중끼리 나누어 가지고 있어서 제절이나 별반 다를 것이 없습니다.

예전 같으면 스님들이, 일대사 해결하려 부모형제까지 버리고 출가했는데, 살림이나하는 주지하라면 공부에 방해된다고 사양하고, 억지로라도 시키면 야반도주했습니다. 그러니 ‘중 벼슬 닭 벼슬’이란 속담이 나왔지요. 그런데 지금은 주지가 돈과 권력을 가진 자리다보니 서로 하겠다고 경쟁합니다. 심지어는 조실을 했던 장로가 곡간열쇠 놓기 싫어 다시 주지를 해요. 원로라는 승려들이 주지할 법납이 지났다고 회주(會主)라는 직함을 만들어서 허수아비 주지를 두고 진짜 주지노릇을 합니다.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이 나와 내 것이라는 관념을 버리라는 것이거늘, 출가수행자들이 제절 갖고 재산 불리고, 더 차지하려고 싸움질하는 모습을 보면 참으로 우리 불교의 앞날이 암울합니다. 모름지기 수행자란 집 없는 곳으로 출가하여 여기 저기 유행하며 견문을 넓히고, 그러다 시절인연이 닿으면 눈 밝은 선지식 만나 일대사 공부 마치는 것이 본업일터인즉, 죽을 때까지 저 편하자고 제절에 머무는 우리의 승가는 이미 불교가 아닙니다.

박/호/석/의/노/심/초/사
불교포커스 여시아사(如是我思)

세상에 그 어떤 종교나 철학보다도 불교가 수승한 것은 보편적이고 객관적이며 과학적 추증성까지 지닌 우주만유의 진리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한국불교는 천 년이 넘게 우리의 정신과 삶의 바탕이 된 비교우위의 역사와 문화적 전통도 가졌습니다. 그럼에도 최근 우리불교가 추락하고 있는 현실이 이해되지 않아 답답해 하면서 '부처님은 어떻게'를 염두로 이 문제를 풀어보고자 합니다.

필자는 자연과학자로 프랑스에 유학하고 농협대학 교수로 재직하였다. 대학생 시절 洪幻星 법사를 은사로 불교에 입문하여 古庵,九山, 杲山스님에게 수계하고, 修不스님에게 간화선을 배웠다. 퇴임후에는 인재양성만이 불교를 살리는 길이라고 군법회에 전념하면서, <니까야>공부와 불교 걱정으로 소일한다.

박호석_전, 대한불교삼보회 이사장 phoseo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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