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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구들이여, 저 사람을 쫓아버려라"

기사승인 2018.12.15  16:2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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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재] 허정스님의 부처님을 따라 거닐며_18

옛 앙가(Anga)국의 수도 짬빠(Campa)는 불자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다. 고대인도 16개국의 나라이름에 앙가국이 포함되어 있지만 이미 부처님 당시에 마가다국에 점령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부처님이 거문고의 비유를 들어 가르쳤던 소나 꼴리위사(Sona Kolivisa)가 이곳 출신이며 소나단다(Sonadanda) 브라만의 부처님과 대화가 디가니까야에 있다. 보드가야에서 250km나 떨어져있는데 도로 포장이 되어있지 않은 구간이 많아 왕복 12시간이나 걸렸다. 짬빠에서 동쪽으로 50km를 더 가면 나오는 위끄람실라(vikrashila)대학터도 순례일정에 넣었다. 보드가야 여래선원주지 원만스님과 인도인 반까즈와 나레스 그리고 아마르와 아노즈 6명이 출발했다. 교통혼잡을 염려하는 나레스의 제안에 따라 우리는 아침 5시에 출발하여 중간에 간식도 먹으면서 라즈기르-문게르(munger)-술탄간즈(sutanganj)를 거쳐 바갈뿌르(Bhagalpur)에 11시 30분에 도착하였다.

가는 길에 갠즈스강을 바라보며 한참을 달렸던 것이 인상깊었다. 도로 주변에는 높은 굴뚝을 가진 벽돌공장이 늘어서 있다. 나레스가 나의 마음을 읽은 듯 강옆에는 오랫동안 갠즈스강이 범람해서 모래가 많이 섞인 진흙이 쌓이게 되었는데 그런 흙이 벽돌을 만들기에는 최적이라서 벽돌공장이 강주변에 몰려있다고 설명해주었다. 현재 바갈뿌르(Bhagalpur)라고 불리는 도시안에는 부처님 당시의 이름인 참빠뿌르(Champapur)라는 곳이 있어 반가왔지만 부처님이 머무셨던 흔적을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나마 경전에 이름이 등장하는 각가라(Gaggala)호수를 찾아 내었다. 각각라호수는 지금은 바이라브 딸랍(Bhairav talab)으로 불리고 있었다. 부처님이 이곳을 방문했을 때 승원이 있었다는 기록은 없다. 우리는 어부가 고기를 잡기위해서 지어놓은 오두막을 잠시 빌려서 삼배와 좌선을 하고 왓지야마히따 경(A10:94)을 독송하였다.

이 경은 부처님이 짬빠의 각가라 호수의 언덕에 머무셨을 때 왓지야 마히따라는 재가신자가 외도 유행승들과의 논쟁을 끝내고 그것을 부처님께 보고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부처님은 마히따의 이야기를 듣고 

“장하고 장하구나, 장자여, 이와 같이 때때로 그들 쓸모없는 인간들을 이치에 맞게 논박해야 한다. 장자여, 나는 모든 고행을 해야 한다고도 말하지 않고, 모든 고행을 하지 않아야 한다고도 말하지 않는다. 장자여, 고행을 하여 해로운 법들이 증장하고 유익한 법들이 쇠퇴하면, 그런 고행은 하지 않아야 한다고 나는 말한다. 그러나 고행을 하여 해로운 법들이 쇠퇴하고 유익한 법들이 증장하면, 그런 고행은 해야 한다고 나는 말한다.”라는 가르침을 주신다.

짬빠에 있는 각가라호수

나와 원만스님은 한글경전을 나레스와 반까즈는 영어경전을 읽고나서 아노즈와 아마르에게 힌디로 통역해주었다. 차안에서 이 경을 미리 읽은 원만스님은 오늘 읽은 경전을 보니 부처님이 모든 고행을 부정하신 것은 아니라는데 경탄하고 예전에 단식하며 정진했을 때 공부가 잘 되더란 이야기를 하였다. 부처님은 ‘모든 것은 업이 원인이다’ 혹은 ‘모두 비구는 고기를 먹지 말아야 한다’는 등의 오직 하나의 원인이나 규칙을 만들어 절대시 하는 것을 경계하셨다.

우리는 각가라호수에서 고기를 잡는 어부를 구경하며 호수주위를 걸었지만 2600년전의 연못에 손을 담그지는 못했다. 물이 너무 더러웠기 때문이다. 이 호수는 원래 이 지방에 살던 각가라 왕비의 명령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각가라호수라고 불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이곳에서 1400명의 재가신자와 5백 명의 비구들과 함께 계시는 모습을 보고 시를 잘 짓는 왕기사존자가 시를 지었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그 당시에는 불교신자가 많이 살고 있었던 것 같다. 이곳에서는 보시 경(A7:49) 쓰레기 경(A8:10) 바후나 경(A10:81) 깐다라까경(M51) 십상경(D34)등의 경이 설해졌다. 빨래와 비누목욕을 하고 물소들이 목욕하여 더러워진 호수, 부처님의 흔적을 전혀 찾을 수 없는 호수를 거닐며 이곳에도 누군가 불상과 경전을 새긴 비석을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중에 방문하는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부처님의 흔적을 느낄 수 있게.

바갈뿌르에 있는 디검바라 자인템플

각가라호수 순례를 마친 우리들은 바갈쁘루 시내에 있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점심을 먹고 위끄람실라로 가려고 했으나 나레스가 그곳은 5시에 문을 닫으니 도착해도 관람이 어렵고 숙박업소도 없으니 이곳 바갈뿌르에서 하루 묵고 내일 일찍 출발하자고 제안했다. 그래서 시간도 보낼겸 이곳의 불교유적이 있는가를 확인하기 위해 박물관을 찾았다. 특이하게도 박물관 입장료를 받지 않아 신기하게 생각했지만 내부로 들어가 보니 왜 입장료를 받지 않는가를 알수 있었다.  볼게 없었다. 우리가 들어가니 그제야 유물이 있는 방 열쇠를 가져와 문을 열어주었다. 박물관 2층으로 올라가자 전통미술을 공부하는 여학생들이 모여 있었다. 일시에 시선이 우리에게 쏠려서 학생들은 우리와 셀카를 찍자고 하고 교수도 우리 일행과 단체사진을 찍자고했다.

외국인이 거의 찾지 않는 동네인지 가는 곳마다 우리를 신기해하며 쳐다봤다. 우리는 박물관을 나와서 거대한 마하비라의 조각상이 있는 자이나교 템플을 들러보기로 했다. 그곳은 관람시간이 지났다며 입장을 거부했다. 우리는 호텔보다는 자이나교템플에서 하룻밤 숙박해보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해 사무실에가서 잠자리를 요청했다. 알고보니 그곳은 이미 돈을 주고 숙박하는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었기에 우리는 몇가지 주의 사항을 듣고 방 3개를 얻었다. 식사는 순례자들이 미리 주문하면 원하는 것을 만들어 주는데 간소한 음식임에도 맛이 좋았고 가격도 1인당 80루피로 착했다. 마침 구자라트에서 순례를 떠나온 자인교부부가 같은 건물에 묵어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들의 경전에는 24명의 티르탕카라(구원자)들이 있는데 각 구원자들의 출생지 열반지등을 순례하고 있다고한다. 24명이면 불자들보다 순례할 곳이 더 많은 셈이다. 살생을 금하는 자이나교인들답게 모두 채식을 했고 모든 수도꼭지에는 얇은 천이 쒸어져 있었다. 우리가 묵은 템플은 옷을 입지않는 디감바라(Digambara) 즉 공의파(空衣派) 소속이었는데 다행스럽게 벌거벗은 수행자들은 보이지 않았다.

길을 막고 농성하는 사람들에게 길을 터 달라고 요구하는 모습

다음날 우리는 아침 7시에 위끄람실라로 출발하였다. 위끄람실라로 가는 길은 비포장이어서 50km임에도 시간이 많이 걸렸다. 중간쯤이나 왔을까 거북이 속도로 가던 차들이 움직이지 않았다. 인도에서는 원인도 모르는채 기다리는 일이 이상한 일이 아니기에 차안에서 무작정 기다렸다. 1시간이 지나도 차들이 움직이지 않자 아마르와 반까즈가 원인을 파악하기위해 나섰다. 1시간쯤 지나 그들이 가져온 이야기는 비포장도로옆에 사는 주민들이 도로포장해달라는 요구를 정부에 관철시키기위하여 트럭과 트렉터로 도로를 점거하고 농성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외국인이기에 설득에 용이할수도 있다고 보고 농성장을 찾아가서 우리차를 보내달라고 요구했다. 우리의 이야기를 들은 그들 중 한사람이 우리에게 여행목적, 국적, 이름 등을 묻고는 5분만 기다리면 보내주겠다고 했다. 그말을 믿고 점거농성지역을 지나 반대쪽으로 와보니 그쪽에도 차가 도로에 꽉차있어서 설사 그들이 우리차를 보내준다고 해도 통과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우리는 우리차를 포기하고 릭샤를 타고 차와 차 사이를 빠져나가며 위끄람실라로 나아갔다. 먼지를 뒤집어쓰고 1시간 넘게 달려 가까스로 오후 3시쯤 목적지에 도달했는데 그때서야 우리가 아침과 점심을 먹지 못했다는 것을 알았다.

위끄람실라 대학터는 산속에 있을거라는 나의 예상과는 다르게 갠즈스강과 가까운 곳에 위치해있었다. 대학터안에 박물관도 같이 있어 표하나로 박물관도 관람할수 있었는데 생각보다 유물의 숫자는 적었다. 8세기에 건립돼 400년간 번성했던 이 대학은 금강승과 탄트릭불교의 본산지이다. 부처님과 관계된 사건이 없는 곳이기에 우리는 잠시 좌선을 하고 유적을 둘러보았다. 원만스님은 티켓을 끊기도전에 앞서 가더니 보이지 않았다. 뒤 따라간 우리가 탑주위를 참배하고 있을 때 원만스님이 홀로 좌선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우리도 탑앞에서 좌선하는 시간을 가졌다. 강과 산이 가까이 있어 그런지 코끝을 스치는 바람이 상쾌했고 이곳이 범상치 않은 터라는 느낌을 받았다. 돌아오는길에 원만스님께 소감이 어떠냐고 물으니 나란다대학과는 또 다르다면서 괜시리 울컥하는 기분이되고 언젠가 여기에 살았다는 느낌도 든다고 했다. 감격해하는 원만스님을 보니 고생해가며 찾아온 보람이 있다. 나는 사실 중간에 차가 막혔을 때 ‘이번에는 인연이 아닌 것 같으니 다음을 기약하고 돌아갑시다’라고 말하려고 했으나 원만스님이 혼자라도 가겠다고 강경하게 나오는 바람에 슬그머니 나의 의견을 접었었다.

위끄라실라 탑에 있는 조각상

돌아오는 길에 그날 처음으로 음식을 먹고 밤길을 달려서 새벽 1시에 보드가야에 도착했다. 돌아오는 차안에서 원만스님은 부처님이 짬빠의 각가라호수에서 설하신 쓰레기경(A8:10)을 읽고 부처님의 단호한 면을 봤다며 약간 충격을 받으신 듯 말하였다. 이번 순례를 부처님의 불호령을 듣는 것으로 마무리하고자 한다.

“비구들이여, 저 사람을 쫓아버려라. 비구들이여, 저 사람을 쓸어내라. 비구들이여, 저 사람을 추방하라. 여기 어떤 사람은, 다른 훌륭한 비구들이 그의 범계를 보지 못할 때까지는 그 비구들이 앞을 보고 돌아보고 구부리고 펴고 가사와 발우를 지니는 것과 꼭 같이 한다. 그러나 훌륭한 비구들이 그의 범계를 보게 되면 ‘이는 타락한 사문이요 사문의 찌꺼기요 사문의 쓰레기로구나’라고 알게 된다. 이렇게 알면 그를 밖으로 쫓아버린다.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다른 훌륭한 비구들을 오염시키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허/정/스/님/의/부/처/님/을/따/라/거/닐/며
불교포커스 여시아사(如是我思)

벌써 4번째 인도성지순례다. 인도의 기후와 도로 사정 등은 순례자에게 만만치 않지만 성지순례를 시작하는 가슴은 늘 설렌다. 스승의 발걸음을 쫓는 일은 매번 새로운 발견을 선물하기 때문이다. 첫 순례 때는 아무것도 모르고 돌아다녔기에 고생한 기억밖에 없다.

두 번째는 그래도 책을 들고 꼼꼼히 찾아 다녔다. 정보가 많지 않아 크게 느낀 것은 없고 다만 부처님의 열반지에 가서 우울증 같은 걸 겪었다. 세 번째는 나를 포함한 스님들 여섯 명과 노트북을 가지고 다니며 경전을 읽고 토론하는 성지순례를 했는데 그 때가 가장 의미 있었다. 그런데 그 순례도 중간에 순례자 한명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기는 바람에 미완의 순례가 되고 말았다.

이 번에는 많은 시간을 가지고 홀로 떠났다. 성지순례후기까지 쓸 작정을 하고 와서 그런지 미처 알지 못했던 새로운 성지를 알게 되었고 잘 안다고 생각했던 성지에서도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번 성지순례에서 느꼈던 소감을 공유하고자 한다.

허정스님_ 전 천장사 주지 budgat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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