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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했다는 이에게 붓다가 말하기를

기사승인 2018.03.11  10:3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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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탈리야 이야기①

사진=pixabay.

나는 얼마 전에 아주 힘들게 결심했습니다. 은퇴하기로 한 것이지요. 평생을 사업하느라 뛰어다녔습니다. 남들보다 더 일찍 일터로 나갔고, 남들보다 더 늦게 퇴근했지요. 이윤을 남기기 위해 노심초사했고, 단 한 푼이라도 손해 볼까 전전긍긍했고, 그러다 애석하게 손해 본 적도 있지만 그래도 성실하고 끈기 있게 매달린 결과, 내 사업은 잘 됐고, 그래서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부자도 되었습니다.

하지만 언제까지 돈벌이에만 매달릴 수는 없었습니다. 세속의 일에 지쳐갔습니다. 그래서 사업을 자식에게 물려줬습니다. 집안일들도 다 물려줬습니다. 이제 나는 세속의 일에서 완전히 물러났습니다. 세속 일을 다 버리고 그만뒀습니다.

사업을 할 때에는 남들 앞에 잘 나가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서라도 화려한 옷과 장신구로 몸을 치장했지만 이제 모든 일에서 손을 뗐으니 옷차림에 신경 쓸 필요도 없어졌습니다. 나는 깨끗한 옷 몇 벌만을 남겨두고 그 옷마저 자식들에게 다 물려주었고, 음식도 간소하게 먹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날 때마다 자연을 찾아다니며 번잡했던 세속 일에 찌든 몸과 마음을 치유하며 지냈습니다. 사람들은 나를 보고 말했습니다.

“포탈리야 장자님은 이제 정말 은퇴하셨군요. 세상일과 거리를 두고 욕심을 떠나서 사시는 모습이 참 보기 좋습니다.”

사람들은 나를 장자라고 부릅니다. 한 가정의 가장이며, 제법 큰 사업체를 이끄는 사람을 ‘장자’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사업에서 물러나 은퇴했으니 나는 장자가 아닙니다. 사람들의 호칭이 맘에 들지 않았습니다. 세속에서 물러난 나를 몰라보니 그 어리석음을 어쩌면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어느 날, 나는 깨끗하게 옷과 신발로 몸가짐을 단정하게 하고 뜨거운 햇살을 가리기 위해 양산을 든 채 숲으로 나왔습니다. 여느 때 같으면 집안 식솔들을 단속하느라 바빴을 테고, 사업 때문에 이리저리 뛰어다녔을 테지만 지금은 한가하기 그지 없습니다. 나는 한낮의 여유를 즐기며 양산으로 햇빛을 가린 채 숲을 산책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 멀리 커다란 나무 아래 수행자 한 사람이 명상에 잠겨 있었습니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아, 그 분은 석가모니 부처님이었습니다. 부처님도 내가 다가가자 명상에서 깨어나 반갑게 인사를 건넸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장자 포탈리야여, 여기 옆에 앉으시지요.”

반가운 마음에 합장을 하던 나는 이 말을 듣는 순간 짜증이 났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를 장자라고 부르지 말아 주십시오. 저는 이제 더 이상 장자가 아닙니다.”

마을 사람들이 ‘장자’라고 부르는 건 그렇다 쳐도, 부처님까지 나를 그렇게 부르니 무시당하는 것 같았습니다. 내가 왜 아직도 은퇴하기 전의 사람으로 불려야 한다는 것인지…. 그런데 부처님은 나의 짜증 섞인 대답에 아무렇지도 않으신지 이렇게 되물으셨습니다.

“지금 그대의 모습과 그대가 풍기는 이미지는 장자 그 자체인데 왜 그렇게 부르지 말라는 것입니까?”

“아, 부처님. 저는 세속의 모든 일을 내려놓았습니다.”

 그러자 부처님은 물었습니다.

“대체 그대가 내려놓았다는 그 세속의 모든 일이란 어떤 일입니까?”

“세존이시여, 저는 제 모든 재산들, 집안 창고에 가득 쌓여 있던 모든 것들을 자식들에게 물려줬습니다. 물려준 뒤에는 자식들이 그것을 가지고 무엇을 하건 전혀 상관도 하지 않고 충고도 하지 않고 지시를 내리는 일도 전혀 하지 않습니다. 그저 내 몸을 가릴 몇 벌의 옷과 소박한 음식으로 만족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제가 내려놓았다는 세속의 일이란 바로 이것입니다.”

내가 집안의 가장이란 자리와 모든 재산, 사업을 자식들에게 깨끗하게 물려주기까지 얼마나 망설이고 망설였는지 부처님은 아실까요? 내 친구들 중에는 자식들에게 모든 것을 물려준 뒤에도 여전히 이런 저런 지시를 내리기도 합니다. 그들은 겉으로는 다 물려주고 손을 떼었다고 하지만 가만히 보면 마음에서는 내려놓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난 그런 일마저도 아예 그만뒀습니다. 왜냐하면 난 정말로 세속의 일에서 은퇴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이 사정을 말씀드리자 부처님은 대답했습니다.

“포탈리야 장자여. 그대가 내려놓았다는 세속의 일이란 바로 그것을 말하는 군요. 그런데 성자들 세계에서도 ‘세속의 일을 내려놓는다’는 것이 있습니다. 당신이 말한 것과 성자들 세계에서 말하는 것과는 내용이 사뭇 다릅니다.”

부처님의 말에 귀가 솔깃해졌습니다. 그러니까 부처님 세계에서도 은퇴라거나 세속 일에서 물러난다거나 모든 일을 다 내려놓는다는 것이 있다는 말 아니겠습니까? 궁금해진 나는 이렇게 여쭙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세존이시여, 그 성자들의 세계에서 말하는 ‘세속의 일을 내려놓는다’는 것이란 대체 무엇입니까? 제게 말씀해주십시오.”

“잘 듣고 생각해보십시오. 내가 이제 말하겠습니다.”

부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장자여, 성자들의 세계에서는 여덟 가지 일을 가리켜서 세속의 일을 내려놓는다고 말합니다. 그 여덟 가지란, 첫째는 생명을 죽이지 않는 일입니다. 생명을 죽이지 않음으로써 생명 해치는 일을 내려놓습니다. 둘째는 주어진 것만을 갖는 일입니다. 주어지지 않는 것을 갖지 않음으로써 주어지지 않은 것을 갖는 일을 내려놓습니다. 셋째는 진실을 말하는 일입니다. 거짓을 말하지 않음으로써 거짓을 말하는 일을 내려놓습니다. 넷째는 남을 비방하지 않습니다. 비방하지 않음으로써 비방하는 일을 내려놓습니다. 다섯째는 욕심내지 않습니다. 욕심내지 않음으로써 욕심을 내려놓습니다. 여섯째는 화내지 않습니다. 화내지 않음으로써 화를 내려놓습니다. 일곱째는 분노하거나 절망하지 않습니다. 분노하거나 절망하지 않음으로써 분노와 절망을 내려놓습니다. 여덟째는 교만하지 않습니다. 교만하지 않음으로써 교만을 내려놓습니다. 성자의 세계에서 ‘세속의 일을 내려놓는다’는 것에 관하여 이렇게 큰 줄기를 말할 수 있습니다.”

귀를 기울이고 있던 내 마음이 따뜻해졌습니다. 세속 일에서 손을 떼고 내려놓았다고 자부했지만 정작 내 행동과 생각에는 여전히 이 여덟 가지 일이 가득 차 있었기 때문입니다. 정작 부처님께서 나를 ‘장자여!’라고 부르셨을 때 분노가 왈칵 솟구치지 않았습니까. 세속 일을 다 내려놓고 은퇴해서 고요하게 살아간다고 자부했건만 단 한 마디 말에 성을 내고 말았으니 내 마음에는 참으로 많은 것이 여전히 가득 쌓여 있었습니다. 그걸 움켜쥐고 끌어안고 지내오고 있었습니다.

나는 가만히 내 마음을 살펴보았습니다. 이 여덟 가지 일이 태산처럼 쌓여 있는 그 마음을…. 부끄러워졌습니다. 나는 정말 무엇을 멈추고 버렸고 내려놓았단 말일까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여덟 가지를 하나씩 음미해보았습니다.

생명을 해치는 일,
주어지지 않는 것을 갖는 일,
거짓말하는 일,
남을 비방하는 일,
욕심내는 일,
화내는 일,
분노하거나 절망하는 일,
교만을 부리는 일.

그 하나하나가 내 마음에 어떻게 웅크리고 있는지를 가만히 살펴보다가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대체 이 여덟 가지를 왜 버려야 한다는 것일까?

이런 건 어찌 보면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본능처럼 늘 따라붙는 것 아닐까? 이런 여덟 가지 일을 그만두고 내려놓지 않으면 그 사람이 어떻게 되기 때문에 굳이 부처님은 이것을 내려놓으라고 하신 걸까?

나는 부처님께 물었습니다. 부처님은 사람들이 어떤 것을 여쭈어도 기꺼이 들어주고 대답해주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부처님에게 나아가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의견을 여쭙기를 좋아합니다. 절대로 사람들의 질문을 꾸짖거나 비웃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여덟 가지에 대한 말씀을 잘 들었습니다. 그런데 조금만 더 자세하게 말씀해주십시오. 왜 여덟 가지 일을 멈추고 내려놓아야 합니까?”

부처님은 마치 이런 질문을 기다리셨다는 듯 대답하셨습니다.

“잘 듣고 잘 생각해보십시오. 내가 말하겠습니다.”
“예, 세존이시여.”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생명을 죽이지 않음으로써 생명 해치는 일을 내려놓는다고 내가 말했습니다. 마음공부를 하는 사람이라면 이렇게 생각합니다.

‘세상을 살다보면 살아 있는 생명을 죽일 수도 있다. 이런 일이 벌어지면 내게 족쇄가 된다. 이 족쇄를 끊기 위해 수행을 해야 한다. 내가 만일 생명을 죽이면 내 스스로가 책망하게 될 것이요, 현명하고 어진 이들이 이 일을 알면 나를 추궁하고 비난할 것이요, 내가 죽은 뒤에 그 행위로 인해 삼악도에 떨어질 것이다.’

마음공부를 하는 사람이라면 이 일을 곰곰이 생각해볼 것입니다. 그러면 ‘아, 생명을 죽이는 일은 이렇게 나를 옭아매는 족쇄이고 장애가 되는구나. 생명을 죽인 까닭에 마음이 괴롭고 그 일을 거듭 생각하다보니 몸에 병까지 나는구나. 마음이 괴롭고 몸이 편치 않으니 이것이 번뇌가 아니고 무엇이랴. 이런 번뇌가 싫다면 나는 생명을 죽이는 일을 그만두고 내려놓아야 한다.’

그는 이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장자여, 이런 이유로 나는 ‘생명을 죽이지 않음으로써 생명 해치는 일을 내려놓아야 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부처님은 여덟 가지에 대해서도 똑같은 이치로 말씀하셨습니다. 세속 일에 얽매여 인생의 대부분을 보내오면서 나는 번뇌에 시달리는 것이 힘겨워서 은퇴했습니다. 세속 일을 내려놓으면 번뇌도 찾아오지 않겠다는 생각에서였지요. 하지만 부처님은 이 여덟 가지 일을 내려놓아야만 번뇌가 생기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번뇌가 일어나지 않으면 얼마나 평화로울까요? 그 마음의 평화를 얻고 싶다면 무엇보다도 먼저 이 여덟 가지를 완벽하게 멈추고 내려놓았는지를 살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아, 무엇을 그만두고 무엇을 내려놓아야 진정한 은퇴인지, 부처님이 우리에게 권하는 은퇴란 어떤 것인지 이제 조금 알 것 같습니다. 어쩌면 나는 무늬만 은퇴자였지 세속 일에 마음이 온통 얽매여져 있었던, 여전히 장자였음에 틀림없습니다. (계속)

이미령 cittalm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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