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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절간에 ‘좀 놀아본 언니’가 떴다

기사승인 2015.09.19  15:4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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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만 팔로워에 빛나는 인터넷 청춘상담가 장재열…“불교만큼 마음 잘 보듬는 종교가 또 어딨니?”

네이버 포스트 팔로워가 무려 4만여 명. 연애ㆍ사랑ㆍ진학ㆍ취업 등 우리 시대 청년들이 쏟아내는 여러 고민을 낱낱이 살펴보며 직설로 돌직구를 던지고, 때론 공감으로 위로하며 대중들로부터 주목을 받고 있는 한 ‘언니(?)’가 있다. 그런데 이 언니, 알고 보니 신심 깊은 불자란다.

대한불교청년회 홍보부장 장재열. 청년들에게는 ‘좀 놀아본 언니’(인터넷 상에서 사용하는 필명)로 더욱 유명한 그의 진짜 정체다. ‘좀 놀아본 언니의 미심쩍은 상담소’라는 저서를 통해 청년들의 가슴을 울리고, 이제는 어엿한 ‘청춘상담소 좀 놀아본 언니들’의 대표를 겸하고 있는 그가 불자, 그것도 모자라 불교계 단체에서 활동가로 살아가고 있다니…. 이것이야 말로 미심쩍은 일이다 싶어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장재열 부장을 찾아갔다.

“딱 보면 언니 같지 않아요?”

17일 오전 10시 30분, 종로 인근의 카페에서 만난 장 부장은 왜 하필 ‘언니’라는 필명을 사용했느냐는 질문에 양 손을 뒤집어 올리며 눈을 크게 뜨고 되물었다. 그렇다. 장재열 부장은 남자다.

   
▲ 장재열 대불청 홍보부장.
페르소나 속 내면의 '언니'와 20대의 치열함을 대변하는 '놀다'의 결합

“여러 가지 중의적 의미가 있겠죠. 사실 제가 학교 다닐 때 여자 같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고 또 그게 콤플렉스로 작용하기도 했어요. 그러다 인터넷 상담을 위해 캐릭터를 만들려고 할 때 정말 번개같이 ‘언니’라는 단어가 지나쳐 갔죠. 아, 어쩌면 이게 페르소나 아래의 본 모습이겠다 싶어 탄생한 이름이 바로 ‘좀 놀아본 언니’에요.”

장 부장에게 소위 ‘놀아본’이라는 수식은 20대의 삶을 그대로 투영하는 단어다. 재수, 삼수를 거쳐 서울대학교 미대에 입학한 그는 정말 소위 잘 놀면서 학점도 놓치지 않기 위해, 그러면서 또 그렇게 애쓰고 있다는 모습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기에 참 많이 노력했다.

“청소년 시기에는 열등감이 많았어요. 여성스러운 성격과 뚱뚱했던 외모가 항상 열등감으로 작용했죠. 그래서일까. 20대를 좀 화려하게(?) 살고 싶었어요. 삼수까지 해서 좋은 대학을 간 뒤 연애도 많이 하고, 소위 클럽도 많이 다니고 또 그러면서 뒤처지고 싶지 않아 학점관리도 철저하게 했죠. 인턴도 하고 대외활동도 진행하고 정말 철인처럼 살았어요. ‘좀 놀아본 언니’에서의 놀아봤다는 수식은 여러 가지 의미일 수 있겠지만 20대의 제 삶 자체를 반영한다고 볼 수 있어요.”

거짓말을 해야 했기에 '끔찍했던' 대기업

최고의 대학을 졸업한 그는 치열했던 20대를 반영하듯 최고의 기업으로 손꼽히는 삼성에 입사했다. 누구나 부러워 할 법한 탄탄대로의 삶일 텐데, 그는 과거 대기업 직원의 삶을 돌이켜보며 “끔찍했다”고 표현했다.

“미대 출신인 제가 회사에서 견디기 힘들었던 이유는 무엇보다 인사팀에서 일을 하게 됐기 때문이에요. 당시에는 58세까지의 제 삶이 너무도 뻔히 그려지는 모습을 직면하는 것이 참 끔찍했어요. 10대에는 대학에 가면 되겠지, 대학생 때는 ‘취직을 하면 되겠지’라고 생각하고 위를 보며 달려왔는데, 정작 취직 후 나의 모습은 승진을 위해 예전과 똑같은 삶을 답습해야 하는 상황이었죠.”

대학생들에게 꿈의 직장이라는 ‘거짓말’을 해야 하는 상황, 사람을 뽑는다는 미명 아래 누군가를 떨어뜨려야만 하는 일을 수행해야 한다는 것 등은 장 부장을 우울증 초기 증상까지 몰아가기도 했다.

“인사팀이니까 취업박람회 같은 거 할 때 대학을 많이 돌아다니잖아요. 대학생들이 저한테 물어봐요. 삼성맨으로 사는 것이 어떠냐고. ‘공평한 이곳에서 글로벌 인재의 꿈을 키우라고, 나는 만족한다고’ 답했어요. 거짓말이었죠…. 우울증 증상까지 나타나면서 ‘이건 아니다’ 싶었죠. 인사팀에서 한 선배는 ‘청년들에게 우리가 일자리를 만들어주고 있는 것이 아니냐’고 위로하기도 했지만, 정말 제가 하는 일은 역설적으로 사람을 떨어뜨리는 일이었어요.”

   
▲ 장재열 부장에게는 '천상 언니'의 피가 흐른다. 어쩌면 이같은 특징이 그를 청춘상담가로 이끈 원동력이었을 것이다.
"지금 당장 너부터 그렇게 살지마"…스님의 일침에 깨어난 청춘상담가

결국 그는 과감하게, 그러나 남들이 보기엔 무모하게 직장을 그만뒀다. 무엇보다 휴식이 절실했기에 그는 6개월 가량 백수로 살기를 선택했다. 그러면서 밖으로 뻗어나가던 에너지를 안으로 기울이는 시간을 보냈다. 경기도 양평 용문사를 찾아가 3박4일간 템플스테이에 참여하며 만난 한 스님과의 대화는 그에게 청춘의 2막을 열 수 있도록 하는 촉매제가 됐다.

“용문사 템플스테이에서 지도법사 스님과 차담을 나누며 ‘회사 인사팀에서 일할 때 구직중인 어린 친구들에게 환상을 심어주며 거짓말 했던 것이 생각나 괴롭다’고 고백했더니 스님이 ‘당시 본심이 무엇이었냐’고 되물으셨죠. ‘열심히, 그러나 아무 생각 없이 살았던 내 모습을 어린 친구들은 답습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라고 말했더니 ‘지금 당장 너부터 그렇게 살지 마. 이제 인사 담당자도 아니고 또 젊으니까, 이 산을 내려가면 너부터 그렇게 안 살면 돼’라고 일침을 가하셨어요. 제게는 그때 그 말씀이 상담을 진행하게 되는 단초가 됐어요.”

그렇게 그는 산에서 일상으로 돌아와 인터넷 블로그를 통한 상담 활동을 시작했다. 자격증이 필요한 전문 상담의 영역에서 한 발짝 떨어져서, 그럼에도 주변에 흔히 아는 형, 오빠, 언니, 누나들보다는 조금 더 진지하게. 그는 딱 그 정도의 위치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진솔한 답변과 대화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 2013년 8월부터 올해 3월까지 1년 6개월여 기간 동안 진행한 ‘좀 놀아본 언니’ 시즌 1은 5천여 건의 상담, 130만 뷰, 2만 8천 팔로워 등의 기록을 남기며 이 시대 청춘을 위한 상담문화에 한 획을 그었다. (네이버 포스트 좀놀아본언니 링크 주소: http://m.post.naver.com/my.nhn?memberNo=184148)

   
▲ 팔로워 4만에 빛나는 좀놀아본언니 네이버 포스트. 청춘들의 고민상담 창구로 유명하다.
상담을 하며 배운 책임의식 "누가 무엇을 물어도 빠짐없이 답해줘야지"

상담은 내담자 뿐 아니라 상담자에게도 공부가 되곤 한다. 장 부장이 현재 상담에 대한 전문적인 공부를 시작하게 된 것, 그리고 누가 어떤 질문을 해도 가리지 않고 모두 답변을 하기로 결정하게 된 것은 모두 상담을 진행하며 배운 인생 공부의 결과다.

“한 번은 트랜스젠더인 친구가 커밍아웃 문제에 대한 고민을 보낸 적이 있어요. 당시 저는 ‘답변을 어떻게 할까’라는 고민보다 ‘아 이건 진짜 어디에 말도 못할 고민일 텐데 이렇게 털어놓는구나’ 라는 생각이 더 컸어요. 그때부터 제가 하는 일에 대한 책임의식과 숭고함을 느끼기 시작했어요. 본격적으로 전문적 상담 공부를 시작하게 된 계기입니다.”

“인기가 좀 많아지자 답변해줘야 할 질문이 너무 많아졌어요. 그때부터 제가 하고 싶은 것만 골라 선별적으로 답변을 하기 시작했죠. 한 취준생(취업을 준비하는 대학생을 줄여 일컫는 유행어)이 고민 상담을 해왔는데 별게 아니라고 생각해 답을 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그 학생이 ‘취업을 위해 서류를 제출한 곳만 70곳인데 아무도 나를 뽑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는 고민 상담 메일조차 채택이 되지 않는다. 나는 어디서도 뽑히지 않는 그런 사람인가보다. 죽고싶다’는 내용의 글을 남긴 거예요.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어요. ‘질문을 하는 이들에게 내 답장 하나하나가 정말 중요한 기다림이었구나.’ 너무 미안했죠. 그때부터 아무리 피곤해도, 조금 늦어질지라도 모든 사람에게 무조건 답장을 하기로 원칙을 정했습니다.”

1년 6개월이 넘게 상담을 진행하며 대외적으로 인지도가 높아졌다면, 안으로는 함께 팀을 이뤄 상담을 진행할 수 있는 동료가 생겼다. 대부분 과거 장 부장으로부터 상담을 받았던 내담자 출신이다. 장 부장은 올해 4월부터 '청춘상담소 좀 놀아본 언니들'의 대표를 맡아 하루하루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 좀놀아본언니의 상담 사례. 사진=네이버 포스트 좀놀아본언니.
타고난 불자(?) 장재열의 불교 인연 이야기

사실 장재열 부장은 태어날 때부터 부처님과 인연(?)을 맺은 뼛속 깊은 불자다. 그래서였을까. 어린 시절 남들이 산과 들, 계곡과 바다로 여행을 다닐 때 그는 항상 이 절, 저 절로 여행 다니기를 좋아했다.

“저희 집안은 독실한 기독교 집안이었어요. 제가 태어나기 전에 저희 부모님은 불임으로 많은 고민을 하고 계셨죠. 어느 날인가 한 스님이 시주를 받으러 저희 집에 오셔서는 어머니를 보시고 ‘혹시 근심이나 의심거리가 있거든 절에 한번 가보라’고 권유했다고 해요. 답답한 마음에 혹시나 싶어 집 근처에 있던 창원 성주사에 가서 불공을 드렸는데, 이후에 곧바로 저를 임신하셨다네요. 그렇게 집안의 종교도 바뀌게 됐죠. 저는 어렸을 때부터 ‘부처님 가피를 받아 태어났다’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그래서 그랬을까요. 청소년 시절, 혼자 여행을 다닐 기회가 생기면 전국 각지의 절을 두루 돌아다니고는 했어요.”

부처님 손에 이끌리듯 태어난 그에게 불교계 활동은 어쩌면 필연적인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블로그와 포스트를 운영하면서 제 스스로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기 위해 선택한 곳이 대불청이었어요. 대불청에서 사람을 뽑는다기에 면접을 갔는데, 대불청 전준호 회장님과 처음에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청년문제에 대한 고민을 공유하며 그 자리에서 갑자기 앞으로 대불청이 나아가야할 방향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게 됐죠. 자연스럽게 내일부터 나오라는 이야기를 듣고 출근을 시작하며 여기까지 왔네요”

   
▲ 부처님 손에 이끌리듯 태어난 그에게 불교계 활동은 어쩌면 필연적인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장재열 부장은 지난해 3월부터 지금까지 대불청 홍보담당자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불교만큼 마음 잘 보듬는 종교가 또 어디있나요?"…기대되는 청년포교의 미래

그가 부처님 품 안에서 꿈꾸고 발원하는 일은 무엇일까? 장 부장은 청년을 위한 인프라가 부족한 불교계 현실에 대한 아쉬움을, 그럼에도 불교를 기반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바람을 동시에 드러냈다.

“불교만큼 사람 마음을 잘 보듬어주는 종교가 어디 있을까요? 법륜스님, 혜민스님을 보세요. 타 종교에는 이처럼 대중들과 잘 호흡하는 유명한 종교인이 거의 없어요. 그런 장점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불교는 청년문제의 불모지라 할 수 있을 만큼 인프라도, 사람도 부족해요. 상담계통에 유명한 강사들 가운데 기독교인들이 참 많은데, 대부분은 기독교 내부에서 성장해서 지금의 자리까지 이른 사람들이에요. 청년들을 키워낼 수 있는 준비가 언제든 되어있는 거죠.”

“삶의 문제에서 시작해야 돼요. ‘불교를 믿어라’라고 단순하게 포교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문제가 불교적으로 자연스럽게 해결될 수 있다는 경험을 심어줘야 하지요. 저는 이제 상담을 통해 그 몫을 채워가려고 해요. 사찰이 그런 상담을 진행할 수 있는 공간으로 자리했으면 좋겠어요. 프로그램 이름도 벌써 지었어요. 템플테라피. 어때요?”

세련되고 대중적인, 그러면서도 불교적 가치를 탄탄하게 붙잡고 있는 그가 ‘앞으로 무엇을 하든 잘 해볼 수 있지 않겠냐’는 기대감을 담아 되묻는 물음에 빙그레 미소가 지어졌다. 이 사람, 알고 보니 좀 놀아본 언니가 아니라 20대를 참 잘 놀아본 언니구나. 앞으로 장 부장이 그려갈 불교계 청년 포교의 미래가 절로 기대된다.

“불교는 철저한 자기 수행의 종교잖아요. 수행은 종교적 언어인데 이를 좀 쉽게 치환하면 곧 주체적인 삶을 의미한다고 봐요.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나는 어떻게 생겨먹은 사람인지를 잘 들여다보는 것이 마음공부의 시작이고, 그 있는 그대로를 솔직하게 바라보며 살아가는 것이 또한 신행이라 생각해요. 청년불자들과 인연이 닿을 때마다 ‘의존하지 말고, 어디에 기대려 하지 말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며 참된 인생을 살아가라’는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이 될 겁니다.”

   
 
   
▲ 장재열 부장의 왼팔에 있는 단주가 유난히 눈에 띈다.

김정현 기자 budgat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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